1시간 책 본 뒤엔 적어도 5분은 눈 감으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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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18면

업무상 하루 종일 컴퓨터 모니터를 봐야 하는 직장인 박모(51)씨. 지난해부터 눈앞의 작은 글자가 잘 안 보여 돋보기를 맞췄다. 일할 때나 책·신문을 읽을 때 돋보기를 쓰는데 눈이 쉽게 피로하고 뻑뻑해진다. 돋보기를 쓰니 갑자기 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까지 하다. 나이가 들면 눈도 노화돼 노안(老眼)이 생긴다.

막을 수 없는 노안, 늦출 수는 있다

노안은 서서히 진행되다 45세가 넘으면 증상이 느껴진다. 우리 눈에는 투명한 럭비공처럼 생긴 렌즈인 수정체가 있다. 이 수정체를 둘러싸고 있는 고리 모양의 근육을 모양체라고 하는데, 모양체근의 수축과 이완에 따라 수정체의 두께가 변한다. 모양체근이 수축하면 그 탄성으로 수정체가 볼록하게 두꺼워진다. 굴절력이 커져 가까이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모양체근이 이완하면 수정체는 평평해지고 얇아져 멀리 있는 물체에 초점을 맺을 수 있다.

중앙대 용산병원 안과 김재찬 교수는 “노화가 진행되고 자외선과 음식 등 환경적인 이유가 쌓이면 단백질로 된 수정체가 딱딱해져 탄력성을 잃는다”면서 “모양체의 근육 또한 수축과 이완 능력이 쇠퇴해 눈에서 초점을 맞추는 조절 기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정시나 근시·원시처럼 시력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수정체와 모양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근육은 이완되는 것보다 수축이 더 어렵다. 이 때문에 노안이 되면 먼 곳보다 가까운 곳이 잘 안 보이는 것이다. 눈앞 10㎝에 신문을 대고서 글자가 잘 안 보인다면 노안을 의심한다. 굴절 이상으로 가까운 것이 안 보이는 원시와 노안은 다르다.

노안이 오면 근거리 시력이 떨어져 휴대전화의 글씨나 책·신문·컴퓨터 등을 보는 거리가 멀어진다. 조금만 어둡거나 글씨가 작아도 더 알아보기 어렵다. 눈의 모자라는 조절력으로 억지로 가까운 곳을 보려고 무리하다 보니 쉽게 피로하고 두통까지 생긴다. 동년배가 노안으로 불편함을 호소할 때 오히려 글씨가 점점 잘 보이는 사람도 있다. -3~-5D(디옵터, 안경도수의 단위)의 경미한 근시였던 이들은 노안이 되면 굴절력이 상쇄돼 젊을 때 내내 쓰던 안경을 벗을 수 있다. 이는 근시로 인한 현상이지 시력이 더 좋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등도 이상의 근시였던 이들은 근시와 원시를 위한 안경을 모두 써야 한다. 근시를 교정하기 위해 40대 초반에 라식·라섹 수술을 받아 안경을 벗었더라도 5년쯤 뒤에 노안이 와 돋보기를 다시 써야 한다.

돋보기는 30분 이상 신문 등 보며 맞춰야
나이 든 몸을 20대처럼 되돌리기 어렵듯 젊었을 때처럼 근거리와 원거리를 완벽하게 볼 비책은 없다.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치료법은 돋보기를 착용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생활에 필요한 범위를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중초점 렌즈나 다중초점 렌즈를 착용한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나 근거리와 중간거리까지 시야가 확보된다. 김재찬 교수는 “돋보기를 맞출 때는 30분 이상 시간을 갖고 신문도 읽어보며 차분하게 맞추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돋보기는 디자인도 많이 세련돼졌지만 여전히 착용을 꺼리는 시니어가 많다. 돋보기가 싫다면 노안을 교정하는 수술을 고려한다.

CK노안수술·커스텀뷰·커스텀매치 등으로 불리는 노안 교정술은 레이저나 고주파를 이용해 각막을 수술하는 방법이다. 각막의 중심부를 깎아 평편하게 만드는 근시 교정술과 달리, 노안은 각막 중심부는 놔두고 주변부를 평편하게 한다는 점이 다르다. 건양대 김안과병원 김성주 교수는 “수술 전에 각막상태·망막상태·백내장 여부 등 다양한 검사를 한 다음 수술한 상태의 눈과 비슷하게 콘택트렌즈를 착용한다”며 “짝눈을 만들어 1~2주 정도 적응해보고 큰 불편이 없다면 수술을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노화로 수정체가 혼탁해져 앞이 뿌옇게 보이는 백내장이 있다면 각막이 아닌 수정체를 수술해 노안을 교정한다. 눈에서 수정체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인공수정체를 넣는 방법으로, 한 번의 수술로 노안과 백내장까지 해결하는 게 장점이다. 수정체를 제거하면 백내장의 원인이 없어진 것으로 백내장이 생기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 안과 김명준 교수는 “고령인구의 70~80%에서 백내장이 있지만 시력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정도의 백내장일 수도 있다”며 “백내장이 생길 걸 대비해 안 받아도 되는 수술을 위험까지 감수하며 미리 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라식 수술 했다고 노안 일찍 오지 않아
요즘은 다초점 인공수정체가 개발돼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볼 수 있다. 다초점 인공수정체는 볼록렌즈 표면에 여러 개의 동심원을 만들어 부위별로 도수를 다르게 만든 것인데 빛이 눈에 들어오는 양에 따라 먼 곳을 볼 때와 가까운 곳을 볼 때 다른 굴절력을 갖도록 했다. 과거에 비해 인공수정체의 광학적 구조설계가 개선되고 있지만 젊을 때 보던 것처럼 이미지가 선명하진 않다.

젊을 때 받은 시력교정술로 눈의 노화가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라식 수술을 했던 사람은 수술을 하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노안교정술로 만족을 얻기 어려울 수 있다. 김명준 교수는 “인공수정체를 넣기 전에 수술 후의 도수를 여러 방법으로 정확히 계산해 결정하는데 라식 수술한 눈에서는 오차가 있다”며 “이를 보정하는 방법들이 나와 있지만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고 했다. 예컨대 원거리가 잘 보이도록 인공수정체를 넣었는데 원시가 되는 것이다. 김명준 교수는 “10~20년 후면 과거 라식을 받았던 사람들이 노화해 백내장이 나타나는 때가 오는데 이러한 문제에 노출될 수 있다”고 했다. 김재찬 교수도 “라식 수술을 한 사람에서 백내장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 인공수정체 수술을 할 때 도수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수술을 할 때 벗겨냈다가 다시 덮은 각막이 출렁출렁하며 힘을 못 받는 게 보인다”고 했다. 재수술을 할 수는 있지만 눈에 부담이 크므로 수술 전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고 결정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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