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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심과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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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신천지를 찾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던 일행이 눈폭풍을 만난 건 1846년 11월. 이들은 도너 호수가 있는 얼음 황무지에 고립된다. 구조의 손길이 닿기까진 6개월이 걸렸다. 81명 중 15명은 젊고 튼튼한 독신 남성이었다. 그런데 이들 중 생존자는 3명에 불과했다. 스트레스와 공포를 이기지 못해 서로 칼부림을 벌이는 등의 돌발행동으로 일찌감치 자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인과 어린이, 여성이 이들보다 오래 버텼고 생존율도 높았다.

 인류학자 도널드 그레이슨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연구 결과 결정적 요인은 ‘가족’이었다. 생사가 불투명한 암담함 속에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챙겨주고 다독였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65세 노인은 손에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5개월 가까이 버텼다. 아내의 헌신적인 간호 덕분이었다. 독일 언론인 프랑크 쉬르마허는 『가족-부활이냐 몰락이냐』 에서 이를 인용하며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라고 단언했다. 절반 가까이 숨져 ‘도너 계곡의 비극’으로 불리는 이 사례는 사실 더 넓은 의미로 읽힐 수 있다. 생사가 교차하는 극한상황에서 구성원의 이타심과 단결은 생존 여부에 커다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5소년 표류기』의 교훈도 비슷하지 않을까. 쥘 베른이 1888년 쓴 이 작품의 원제는 『2년간의 휴가』 다. 무인도 표류라는 ‘악몽’이 모두가 무사 귀가하는 ‘휴가’로 바뀌게 된 건 소년들이 협동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914년 남극 탐험에 도전했다 빙하에 갇힌 어니스트 섀클턴 경은 자기 몫의 비스킷을 동료와 나눠먹고, 동상에 걸리면서도 남에게 장갑을 양보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유도했다. 결과는 634일 만의 전원 생환. 탐험은 실패였지만 그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건 그래서다.

 우리는 최근 69일간 갱도에 갇혔던 칠레 광부 33명의 기적을 지켜봤다. 막장 속 가늠할 수 없는 공포 속에서도 이들은 ‘오락반장’을 정하는 등 역할 분담을 해가며 버텼다고 한다. 물론 혼란과 동요가 있었겠지만 이기심보다 이타심, 분열보다 단결을 염두에 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생환 후 인터뷰나 영화화·출판 제안을 받게 될 경우 거둘 경제적 이익을 33등분하자는 합의까지 했다고 하니, 나중의 갈등까지 사전에 차단하려는 보기 드문 팀워크다. 나보다 너,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이타심이야말로 생존의 보증수표다.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