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문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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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예술이나 문화가 전반적으로 볼품없고 빈약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시만은 예외가 아닌가 한다.비록 상업적 차원에서 다른 출판 장르에 비해 비중이 없을지 몰라도 시인을 지망하는 많은 젊은이가 있고 그들을 독자로 갖는 특권을 누리는 현역 시인들의 시집이 꾸준히 출판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시를 존중하는 사회는 문화적 생명이 살아 있는 사회라고 나는 믿는다.

예전에 중국을 본떠 과거라는 방식을 통해 시 잘 쓰는 사람들을 관리로 뽑아 등용했던 관례야말로 지극히 높은 문화수준의 틀림없는 증거다. 자신이 구상한 이상적 공동체에서 시인을 추방하려 한 플라톤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꽉 막히고 재미없는 비문화적 인간이었을까.

시가 문화와 예술의 핵심이자 근본이라는 점은 시라는 단어가 어떻게 은유적으로 쓰이는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분야나 장르를 불문하고 가장 뛰어난 작품은 그냥 시라고 흔히 부르고 뛰어난 기술자 또는 예술가를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시는 최상급의 예술을 가리키는 수사학적 표현이다. 그런 수사학적 의미와 별도로 문학의 한 분야, 글의 한 종류로서 시야말로 실제로 제 예술 가운데 으뜸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많다.

나는 누구보다도 천상병의 시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1966년에 발표된 '주막에서'를 제일 좋아한다. 이 작은 지면에 그 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은 일종의 액자를 끼워 새롭게 보이게 하려는 시도로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그 작품에 대한 내 나름의 찬양이다. 포스트모던적인 인용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하라고 준 귀중한 지면에 유명한 시인의 유명한 시를 그대로 전재하는 것이 필자의 게으름이나 지면의 낭비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설픈 해설이나 주석을 다는 것보다 그저 그 시를 많은 사람이 다시 읽는 것이 값진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소박한 언어로 절묘한 이미지를 구현해 보여주는 이 뛰어난 시는 그 의미의 폭이 매우 넓고 심오하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항상 새로운 느낌을 준다. 이런 기분을 나는 다른 이들과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고 싶은 것이다. 주관적 취향을 광고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소 번거롭지만 어느 한 구절도 생략하거나 빠뜨려서는 안 될 것 같아 전문을 그대로 옮겨놓는다. 혹시 편집자들이 화를 내거나 나를 방만하다고 탓하며 비웃지 않기를 바라면서.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주막에서

- 도끼가 내 목을 찍은 그 훨씬 전에 내 안에서
죽어간 즐거운 아기를 (장 주네)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덩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 순하게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 양
밤은 깊어 가는데,
할머니 등 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빡 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