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내기골프, 도박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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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남부지법 형사6단독 이정렬 판사는 수천만원씩 걸고 수십차례 내기 골프를 친 혐의(상습도박)로 구속기소된 선모(50)씨 등 네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판사는 지난해 5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해 화제가 됐다.

선씨 등은 2002년 12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32차례에 걸쳐 8억원대의 내기 골프를 친 혐의로 기소됐으며 검찰은 각각 징역 2~3년을 구형했다. 이들은 전반 9홀은 한타 당 50만원, 후반 9홀은 100만원씩 걸고 내기를 했다. 동점이 될 경우에는 다음 홀의 판돈을 두배로 해 한 경기에 걸린 돈은 적게는 4500만원, 많게는 1억원이나 됐다.

이 판사는 "상습도박죄가 성립하려면 내기 골프가 도박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며 "화투나 카지노는 승패의 결정적인 부분이 우연에 좌우되기 때문에 도박이지만, 운동경기는 경기자의 기능과 기량이 지배적으로 승패에 영향을 끼치므로 내기 골프는 도박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이어 "운동경기의 승패에 재물을 거는 경우까지 도박죄에 포함하면 국가대표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받는 포상금이나 프로선수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거둘 때 받는 성과급도 도박이 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기 골프가 도박행위라면 홀마다 상금을 걸고 승자가 이를 차지하는 골프의 스킨스 게임도 도박이며, 더 나아가 박세리.박지은 선수가 재물을 걸고 골프경기를 해도 도박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사회통념상) 귀족스포츠로 인식되는 골프를 즐기면서 많은 액수의 재물을 건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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