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과학기술인들이 자기개혁 나설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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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구조조정이나 행정구도의 변화 등에 시달리느라 과학기술자들의 피로감이 누적돼 왔다. 그래서 사실상 과학기술부 부활이라고 할 만한 이번 정부 결정은 파격적인 ‘선물’로 보인다. 국과위는 앞으로 과학계가 국가 과학기술의 청사진을 짜는 것에서부터 예산의 조정 배분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간여할 수 있다. 오랜만에 연구개발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받게 됐다.

이제 공은 과학기술계로 넘어왔다. 정신 바짝 차리고 받아야 한다. 관련 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서부터 상설 국과위의 운영, 이 다음에 이어질 24개 정부 출연연구소의 개편 문제가 순풍을 탈 수 있느냐는 과학계 인사들의 역량과 합심에 달린 때문이다.

국회 통과만 해도 그렇다. 과학계가 과거처럼 제 목소리 한 번 결집하지 않으면 국회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남들이 알아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길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육인적자원부에 통폐합되는 아픔을 겪은 것은 과학계에서 누구 하나 총대 메겠다는 사람이 없는 탓이 컸다. 때마침 5일 열린 한 국과위 관련 토론회에서 ‘향후 대안을 마련하는 데 과학기술자들이 앞장서자’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국과위 인적 구성, 출연연 구조 개편 안도 과학기술계가 짜서 정부에 제안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제도가 좋아도 운영하는 사람이 잘못하면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엉뚱한 인물이 정치권 줄이나 타고 국과위를 맡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과학계가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학계의 핵심 기관인 한국연구재단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수장들이 최근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과위의 장관급 부위원장이 이렇게 된다면 과학계는 얼굴을 들 면목이 없다. 정부 출연연구소들이 현재의 구도를 허물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은 ‘욕심 사납다’는 지적을 들을 수 있다. 아프지만 버릴 건 버리고 가야 국민 여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자기개혁과 희생을 과학기술자 스스로 감수해야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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