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배움의 기쁨 덕에 암 극복한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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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배움의 기쁨이 이토록 큰 활력이 될 줄 정말 몰랐어요."

10여년간 유방암으로 투병해 온 연극인 이주실(61)씨가 오는 22일 충북 청원의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를 졸업한다. 2001년 입학 당시만 해도 그는 약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상태였다. 수시로 구토에 시달려 수업 중에도 교실을 금세 빠져나갈 수 있게 출입구 쪽 앞자리에 앉아야 했다. 시험 도중 쓰러진 일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반이 되면서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암을 극복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다. 더 이상 약도 먹지 않는다.

이씨는 사회복지특성화 대학인 이 학교에 재수 끝에 입학했다. 친구의 소개로 전남 영광의 영산 성지고에서 연극지도 및 상담활동을 하던 중 "상담에 관해 이론적으로 더 공부를 하고 싶어" 2000년 대학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실패하고 이듬해 재도전해 성공했다. 1960년대 초 대학에 다녔었지만 그는 편입학 대신 새내기 생활을 택했다.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성치 않은 몸(그는 93년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두차례의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았다)으로 무슨 공부냐고요."

하지만 복잡한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공기 맑은 캠퍼스에서 생활한 것은 오히려 득이 됐다(학교 측은 그가 교수용 기숙사 방을 쓸 수 있게 배려했다). 이씨는 병약한 얼굴을 감추기 위해 짙게 화장하던 것을 그만두고 배낭에 청바지 차림으로 자식뻘의 동급생들과 어울렸다. 합창 동아리를 조직해 공연을 다녔고, 성지고.소년원.공부방 등에서 연극 지도와 상담 등 자원봉사에도 힘썼다. 그러면서 148학점을 이수했다.

"교양국어부터 전공과목까지 흥미롭지 않은 게 없었어요. 과제가 많아 힘에 부쳤고 기억력도 떨어져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배우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죠. 그런 경험을 글로 써둔 게 책 두권 분량은 됩니다."

그는 학생복지 분야를 더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다. 탈북청소년학교가 문을 여는 대로 달려가 봉사할 예정이기도 하다.

학업과 봉사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지난해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에 출연했던 그는 올해는 본업인 연극 무대에도 복귀한다. 64년 데뷔한 이후 '위기의 여자''영국인 애인''마요네즈' 등 숱한 연극에 출연했던 이씨는 96년 죽음을 앞둔 자신의 심경을 다룬 연극 '이별연습'을 무대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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