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198> 북한의 사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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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남북이 하나입니다.” 탈북자 강모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도 남한처럼 사교육(북한 표현은 개별교습)이 문제라고 합니다. 과외가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돼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됐다고 합니다. 무상 공교육을 표방하는 북한에서 사교육은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교육의 기승으로 공교육이 이미 무너졌다는 전문가들 분석도 나옵니다. 북에서 직접 사교육을 했거나 받아본 이들의 육성을 들어봤습니다.

전수진 기자

한달에 근로자 생활비 10배 버는 교사도

최근 북한에서도 남한처럼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이 문제라고 한다. 예체능부터 외국어까지 과목도 다양하다. 사진은 학생들이 평양 시내 평양제1중학교에서 교사의 지도에 따라 시청각 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화보 조선 2010년 6월호 게재 사진]

“지금은 보통 한 달에 학생 10명을 맡아 (과외로) 가르쳐주는데 15만원을 번다. 생활이 달라졌다. 교원질 할 땐 옥수수밥 먹고 살았는데 이젠 하루 세 끼 쌀밥 먹는 수준이 됐다.” 북한 평양 만경대구역의 30대 후반 교사 홍성철 선생님의 말이다. 대북인권단체 ‘좋은벗들’이 2008년 7월 발간한 ‘오늘의 북한소식’ 172호에 실린 내용이다. 북한 근로자의 한 달 평균 생활비는 1만~2만원 선이다. 홍씨만이 아니다. 북한에서 이젠 사교육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게 탈북자들과 대북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탈북자인 김현아씨는 지난 5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악기 교육에서부터 사교육이 시작돼 컴퓨터·미술로 확대됐다”며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에 대해 북한 내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통일연구원 조정아 박사는 『북한의 일상생활세계』(한울)에 실은 ‘북한 교육일상 연구’ 글에서 “경제난 이후 북한 교육 일상엔 전례 없는 변화가 닥쳤으며 북한의 공교육은 이미 형해화(형식만 남은 상태)됐다”고 주장했다.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북한·통일정책학과 김영수 교수는 “1990년대 중반 경제난을 거치고 2000년대에 시장 요소가 확대되면서 계층분화 등 사회변화가 나타났다”며 “그 결과 사교육이 널리 퍼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교수·교사 하다 아예 과외 전문으로 나서

중구건설대학의 강의 모습. [화보 조선 2010년 6월호 게재 사진]

장모(42)씨는 함경북도 청진 광산금속대학교 수학 교수로 근무하다 2008년 2월에 부인과 함께 서울로 왔다. 손풍금(아코디언) 선생님인 부인과 장씨 둘 모두 북에서 과외를 했다. 장씨의 부인은 인기 있는 손풍금 과외 선생이었다. 장씨는 인터뷰에서 “수학 과외를 하다 단속에 걸려 구금이 됐을 때 간수가 다가와 ‘내 딸도 손풍금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무료로 가르쳐주면 빼내주겠다’고 해 개별교습을 약속하고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전했다. 장씨는 사교육의 대부분은 교수·교사가 직접 한다고 전했다. 부인의 경우처럼 교사를 하다가 아예 과외 전문으로 들어앉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부인의 경우 개인 교습을 해준 학생이 전국손풍금경연대회에서 2등을 하면서 “저 선생한테 배우면 된다”는 소문이 나서 인기를 얻었다고 장씨는 전했다. 특히 여교사들은 결혼 등을 핑계로 사직서를 내고 과외 전문으로 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장씨는 자신의 대학 시절 일화도 소개했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장년의 신사가 다가와 “내가 김책대학을 졸업하고 교수를 오래하다 은퇴했는데 한 달에 천원만 내면 개별교습을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개별교습 받을 돈이 없다고 하자 그 노신사는 아쉬워하면서 자리를 떠났다”고 했다.

권력기관·군인 자녀들 많이 받아

평양제1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실험 실습을 하는 모습.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누구일까. 평양시 은정구역에 살다 2003년 남편·아들과 서울에 온 강모(43)씨는 “예체능계 전공 학생들이 주로 많이 받는다”며 “부모의 정성과 본인의 노력으로 경연대회에서 수상해 좋은 학교에 들어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북에 거주하는 동안 아들에게 피겨스케이팅 과외를 시킨 적이 있다. 물론 남한처럼 과외도 가정형편이 돼야 가능하다. 강씨는 “예체능은 가정환경이 괜찮아야 시킬 수 있다”며 “남한 출신은 어렵고 주로 권력기관 자녀들이나 풍족한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시킨다”고 전했다. 북한 교육에서도 양극화가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강씨는 “상위 몇 % 부유한 생활권의 가정 자녀는 일상적으로 개별교습을 받지만 일반 주민은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장씨도 “개별교습을 받는 학생들은 경제력도 탄탄하고 권력의 핵심에 있는 부유층”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보통 주민의 자녀는 개별교습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악스럽게 공부를 해야 한다”며 “짬짬이 선생들 집에 가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손에 든 게 없을 경우엔 미안해서 가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권력층과 부유층 자제가 사교육을 받다 보니 단속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장씨는 “학부모들을 통해 ‘이번에 내려오는 검열 요강에 개별지도가 포함돼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특히 일반 주민보다 생활수준이 높은 군인 가족의 사교육 열풍이 거셌다”고 회고했다. 군부대의 경우 대개 외진 곳이라 교육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자녀들의 사교육을 많이 시킨다는 것이다.

손풍금·성악·핸드볼서 영어·중국어까지

중구건설대학의 건설시공법 강의 시간.

주로 예체능이 사교육 대상이지만 최근 들어 외국어 교육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장씨는 전했다. 장씨는 “1990년대 이후 영어 교습은 흔해졌고 중국어가 최근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출신 김책공대 졸업생은 출신 성분 때문에 출세를 못 하다가 청진에 와서 일본어 사교육 교사로 꽤 돈을 벌었다고 한다. 예체능 분야는 손풍금·성악·핸드볼·예술체조가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강씨는 “예체능은 북한체제 특성상 최고의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방과 후 교사 집에서 … 그룹과외도 성행

장씨에 따르면 사교육은 주로 방과 후 교사의 집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학부모가 잘사는 경우엔 그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숫자가 많을 땐 학부모들의 인맥을 동원해 탁아소와 같은 공공건물을 빌려서 하는 경우도 있다. 사교육이 이뤄지는 방식에 대해 장씨는 “사교육을 희망하는 학생은 먼저 선생과 언제까지 얼마의 돈을 내 과외를 받을 것인지, 성적 목표는 무엇인지를 선생과 협의한다”고 말했다. 과외 기간은 주로 한 학기를 기본으로 삼는다고 한다. 강씨는 아들을 과외시켰던 경험에 비추어 “수학 선생의 경우 보통 1주일에 4번 정도 가르치는데 주로 과제를 주고 그 풀이 과정을 지도하는 것이었다”며 “중학교 졸업생들은 이과대학 입시문제 혹은 모스크바대학 시험문제를 선호했다”고 회고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교육의 대가가 현금화한 것은 1990년대 이후라고 한다. 그 이전엔 현금을 건네주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장씨는 “2000년까지만 해도 학생들이 땔감·식량·옷을 사례로 가져가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며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공공연히 ‘나 어느 담배 피운다’고 얘기하면 그 담배를 사례로 들고 오라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현금으로 사례를 하게 되면서 장씨는 수학을 가르치며 1명당 한 달에 5000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5명 정도의 그룹으로 과외를 했기 때문에 한 달에 2만5000원을 번 셈이지만 많은 게 아니었다고 장씨는 말한다. 일본어 과외 선생의 경우 1인당 2만원을, 손풍금을 가르친 부인의 경우도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좀 사는 집들은 5만원이 한 달 식량 가격이지만 15만~20만원을 교육에 투자한다”며 “심지어 외국인 개인교사까지 고용해 월 개별교습비로 수백 달러를 쓰는 가정도 봤다”고 말했다.

간부 되기 위한 경쟁 치열, 대학이 좌우

강씨는 북한의 사교육 성행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둘째, 자식을 좋은 직장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하며, 셋째, 정말 잘 풀리는 경우엔 해외로 나가거나 권력기관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장씨는 간부가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 때문에 사교육이 잦아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대학 졸업은 북한에서 당 일꾼이나 행정지도 일꾼이 되기 위한 간판이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주체철학’ ‘김정일 노작’과 같은 주요 과목에서 점수가 나쁘면 제재를 받는다. 간부 등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군인도 과외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실제로 한 제대군인은 고위 간부였던 장인의 강력한 권유로 과외를 했다고 소개했다. 간부가 되기 위해선 낙제-보통-우등-최우등 순의 성적에서 적어도 우등의 성적은 거두어야 한다고 장씨는 말했다. “군대에 보통 10년은 근무하는데 제대하면 머리가 텅 비어 온다”며 “교사들도 이들에게 ‘학교 교육 가지고는 안 된다’며 개별교습을 권유한다”고 장씨는 말했다. 장씨는 “1년을 과외해도 성적이 안 오르는 애들의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하다가 당국에 얘기가 들어가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며 “이 문제로 교사 등이 좌천되거나 해임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사교육은 남북 공통의 골칫거리인 셈이다. 부모의 자식교육 열풍엔 38선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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