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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비, 나쁜 소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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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90년대 중반 업계 점유율 1위를 달리던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는 축구공 꿰매는 소년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 탓에 큰 곤욕을 치렀다. 축구공 1개는 육각형 가죽 32조각을 1620회 바느질해야 완성된다. 나이키가 아웃소싱한 파키스탄 시알코트 공장에선 어린이들이 하루 13시간 중노동을 하고 있었다. 미국 시사지 라이프의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이키 주가는 급락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 경영 등을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사례다.

물건을 살 때 생산 과정,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 만든 기업의 도덕성 등을 고려하는 것. 최근 대두된 ‘윤리적 소비’다. 낮은 가격이 소비행위의 최우선 결정 요인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젖소의 건강을 생각해 유기농 우유를 마시거나, 지역경제를 위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먹는 식이다. ‘착한 소비’로도 불린다. 빈곤국 아동노동력을 착취한 축구공은 싸도 사지 않는다. 공정무역 운동도 윤리적 소비의 한 형태다. 제3세계 농민이 커피 원두 1㎏을 팔아 버는 돈은 10센트 남짓. 이윤의 99%는 커피회사와 수출입업자, 소매업자 등이 가져간다. 그러니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면 이런 ‘강도질’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윤리적 소비는 쇼핑을 사회적 행위로 본다. 윤리적 소비 운동을 주도하는 영국 잡지 ‘에티컬 컨슈머’는 심지어 “쇼핑할 때마다 투표하는 것처럼 여겨라. 연비 나쁜 4륜구동차를 사는 건 기후변화에,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건 인권에, 유기농 식품을 사는 건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투표행위”라고까지 한다. 윤리적 소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고려 없는 소비는 ‘나쁜 소비’라는 흑백논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공정무역 제품에 대한 구매가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넉넉할 땐 ‘착한 소비’를 하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 때 ‘나쁜 소비’를 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돈을 아끼기 위해서’라는 게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보인다.

최근 한 대형마트 피자가 인기를 끌자 ‘윤리적 소비’ 논쟁이 벌어졌다. “중소 피자가게를 죽이는 대기업의 횡포”라는 비난과 “싸고 좋은 제품을 원하는 건 소비자의 본능”이라는 반론이 팽팽히 맞선다. 착한 소비와 나쁜 소비, 피자 조각 자르듯 딱 잘라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