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모든 인사는 정실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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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가수 지망생들의 실력과 열정 외에 ‘슈퍼스타K’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심사위원이다. 회에 따라 일부 변화가 있지만 엄정화·이승철·박진영·윤종신·이문세 같은 중견급 이상 프로가수들이 심사를 맡는다. 이들의 극히 ‘주관적’인 평가가 던지는 시사점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 가수 경력의 내공을 담아 자기 이름의 무게를 걸고 출연자들에게 혹평과 호평을 서슴지 않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어떤 심사위원은 “사실 저희(심사위원) 4명은 좋아하는 음악이나 가수가 다 다르다”며 심사기준이 제각각일 수 있다고 대놓고 밝혔다. “잘하리라 기대했는데 기대에 어긋났다. 내 마음 속에 반전이 일어났다”며 특정 출연자에게 면박을 주기도 했다. “음악은 음악이지 ‘음학(音學)’이 아니다. 남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자기 노래를 하라”고 다그치는가 하면, “예선에서 당신을 뽑은 이유는 오로지 눈빛 때문이었다”는 심사위원도 있었다. 점수도 종종 심사위원에 따라 들쭉날쭉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인상(印象)비평의 주관성·즉흥성·비일관성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심사에 임하는 그들의 진정성, 예스럽게 표현하자면 ‘사무사(思無邪)’의 자세 덕분이다. ‘슈퍼스타K’ 심사를 맡은 가수들은 자신의 경력과 명성, 한마디로 말해 전 인격을 걸고 심사에 임한다는 믿음을 대중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대선배 한 분은 평소 “모든 인사는 정실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정실(情實)은 사전적으로 ‘사사로운 정이나 관계에 이끌리는 일’이니 그 선배의 말은 일종의 역설(逆說)이다. 제아무리 제도나 절차를 갖추어도 세상에 완벽한 인사는 없다. 채용·평가·승진·좌천·발탁에서 대입 수험생 면접, 입학사정관제에 이르기까지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심사위원이 객관적 제도를 넘어 자신의 경력과 인격을 걸고 ‘주관적’으로 결정을 내릴 때 보다 바람직한 인사가 완성된다는 뜻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야 ‘무난한 사람’ 위주의 인사 관행이 극복되고, 경우에 따라 ‘산도 높지만 골도 깊은’ 인재나 ‘흠집 나고 옹이도 많지만 수백 년을 우뚝 버텨 온 거목(巨木)’ 같은 인재를 과감히 발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역시 ‘신뢰’다. 일반 기업 오너라면 역설적 의미의 정실 인사를 할 수 있고 실제로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 잘못 써 기업을 말아먹고 싶은 오너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공직 채용이나 대학입학 같은 공공 부문에서는 해당 부처·대학 외에 일반 국민 다수의 신뢰와 동의가 대전제다.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고등고시 같은 관료 채용 제도에 언제까지나 의존할 수는 없다. 대학 입학도 점수 외에 장래성·인성 등 주관적 지표의 비중을 늘리는 게 대세다. 당사자의 실력뿐 아니라 거시적인 계층이동성·사회통합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제도는 아무리 촘촘해도 한계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것은 채용담당관이나 입학사정관이 각자의 인생 전부를 걸고 주관적으로 ‘정실’로 인사를 하는 풍경이다. 그 든든한 뒷심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신뢰 자본’인데, 우리 사회는 그게 얼마나 될까. ‘공정’과 ‘객관’도 좋지만 인사에는 그게 다가 아니니 답답해서 하는 소리다. 사회 각 분야가 깎아놓은 밤처럼 예쁘장하고 고만고만한 사람들로만 채워질까 봐 걱정이라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