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9월 수상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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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이달의 심사평

환하다, 어머니가 불 밝혀놓은 채반 속 홍시

응모자들을 위해 좋은 시조의 요건을 먼저 꼽아본다. 첫째, 소재의 신선함이다. 남들이 써 온 진부한 소재는 마음을 끌지 못한다. 둘째, 개성이다. 나만의 목소리로 주제, 표현 기법, 운율적 가락 등에서 특징 있는 시를 빚어야 한다. 셋째, 간결성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3장 안에 표현해야 한다. 넷째, 시어 선택이다. 한자어 등 어려운 말을 쓰면 전달력이 약해진다. 다섯째, 관념을 형상화해야 한다. 삶·인생·사랑·인정 등의 관념어가 형체 있는 것으로 표현됐을 때 독자는 감동을 느낀다. 여섯째, 긴장감이다. 3.4조 또는 4.4조가 반복되는 단조로운 율조는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일곱째, 감동이다. 서정의 바탕 위에서 지성이 번뜩일 때 감동이 유발된다.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이종현 씨의 ‘홍시’가 가장 돋보였다. 초장을 2행, 중장과 종장을 각각 4행으로 짧게 행갈이를 하면서도 시조의 호흡과 가락을 오롯이 살렸다. 관습적인 행갈이를 벗어나려는 창의성이 느껴진다. 그 떫던 맛을 햇살로 우려내고 감이 성숙해 나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고도 단아하게 육화됐다. 어머니가 불을 밝혀놓은 채반 속의 홍시같이 환한 작품이다.

차상으로는 나남선씨의 ‘봄맞이’를 뽑았다. 교도소에 갇힌 전중이(죄수)가 맞이한 쇠창살 밖 봄의 눈부신 생명력을 아주 슬프고도 희망차게 노래한 이 작품은 소재부터 참신하다. 하지만 시어의 선택과 문학적 형상화의 측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차하는 임은정양의 ‘양초, 울다’이다. 고등학생답지 않은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거니와 제 몸을 태우면서 울고 있는 양초에 대한 관찰도 자못 진지하다. 하지만 시가 이렇게 어려워야 할 필요성이 과연 있을까? 김원·서상구·정민석·김보라 씨의 작품을 들고 오래도록 망설였다. 결실의 계절인 다음 달에는 지난 봄에 땀 흘려 뿌린 것을 수확하는 기쁨을 다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심사위원:오종문·이종문>

◆응모 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편번호: 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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