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세상읽기] 제 발등 찍는 중국의 고성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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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이 일본을 무섭게 몰아붙이고 있다. 서전(緖戰) 승리의 기분에 들떠 이참에 일본에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는 기세가 등등하다. 분쟁 수역에서 조업하다 구금된 자국 어선의 선장을 온갖 압력 수단을 동원해 구해내더니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까지 요구하고 있다. 뺨을 맞은 일본에 무릎까지 꿇으라는 주문이다. 중국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는 어디로 갔나. 지나친 힘자랑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 발등을 찍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무인도 5개와 암초 3개로 이루어진 동중국해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는 면적을 다 합해도 7㎢에 불과하다. 해상로의 요충이고, 주변에 석유와 가스가 많이 매장돼 있다지만 이 돌섬 몇 개 때문에 전쟁을 한다는 건 난센스다. 미·일 동맹이 깨지지 않는 한 중국이 무력으로 센카쿠 열도를 점령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전쟁 할 게 아니라면 중국도 이쯤에서 그만 물러서는 것이 상책이다. 일본은 이미 이번 일로 충분히 수모를 겪었다. 더 이상의 굴욕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고, 무리다. 중국이 말하는 실용주의와 현실주의 외교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일러스트=강일구]

영토 주권에 관한 한 양보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중국은 이번 기회에 일본에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19세기 말 청일전쟁의 승리를 틈타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자국 영토에 편입시킨 데 대해 분하고 억울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일본에 당한 역사적 수모를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센카쿠 열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힘을 동원한 압박은 반발을 부를 뿐이다. 애국주의로 무장한 네티즌의 여론을 중국 정부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일본 정부가 국민의 반중(反中) 여론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중국을 중시한다는 것이 집권 민주당의 외교 노선이지만 여론을 거스르면서까지 그렇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마주 보고 달리다 이번엔 일본이 먼저 멈춰 섰지만 다음에도 그렇게 하리란 보장은 없다.

중국이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센카쿠 열도가 아니라 미국이다.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는 미국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한·중·일 순방 중 도쿄 산토리홀에서 한 연설은 미국의 아시아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연설에서 그는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라고 선언했다. 아시아를 향한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10+1 정상회의’를 정례화했고,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참여도 공식화했다. 다음 달 말 베트남에서 열리는 EAS에 미국은 옵서버로 참석하지만 정회원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원자력협정 체결을 계기로 인도와의 협력을 가속화하는 한편 중국과 인접한 베트남과의 군사·경제 협력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중국해의 난사(南沙) 군도와 시사(西沙) 군도 영유권 분쟁에 대해 침묵하던 미국이 최근 들어 국익과 직결된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나선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미국의 행보는 기본적으로 21세기 힘의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겠지만 중국에 대한 견제 의도를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압력이 커질수록 아시아 주변국들은 워싱턴에 기댈 수밖에 없다. 중국이 주변국들에 고성(高聲)을 지르면 지를수록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주면서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천안함 사태와 이번 센카쿠 분쟁에서 중국이 보여준 강압적 태도는 안보적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미(對美) 의존을 높이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국의 아시아 복귀 행보가 빨라지면서 호주-인도-베트남-일본-한국을 잇는 대중 포위망이 점점 가시화하고 있다. 중국이 자초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기 어렵다.

‘중국 위협론’과 ‘중국 책임론’ 모두 중국엔 부담이다. 미국은 ‘G2’의 모자를 씌워주며 중국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한편 아시아 주변국들의 중국 위협론에 편승해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개도국에 불과한 중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논리로 중국 정부는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한편 ‘화평굴기(和平<5D1B>起)론’으로 중국 위협론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대응이 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미국이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에 올라타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역할은 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 또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노골화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내부적으로 중국은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빈부격차에 지역격차, 민족갈등과 부정부패, 인권·환경·에너지 문제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내부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을 찾을 때까지 일단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빈 구멍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힘을 믿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자신의 허점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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