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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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해’라고 한다. 한자로는 연(年)·세(歲)라고 적는다. 두 한자는 원래 농작물이 잘 익었음을 뜻했다. 풍년(豊年)이라고 할 때는 ‘유년(有年)’, 대풍작을 이야기할 때는 ‘대유년(大有年)’이라고 적는 이유다. ‘망세(望歲)’라고 적으면 농작물 작황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기적으로 운행하는 하늘의 별에 가을 서리를 합친 ‘성상(星霜)’도 한 해를 뜻하는 단어다. 추위와 더위를 한데 붙여 만든 ‘한서(寒暑)’도 마찬가지 뜻의 단어다. 사계(四季) 또는 사시(四時) 중의 봄과 가을을 뽑아 엮은 ‘춘추(春秋)’도 덧없이 흐르는 세월 속의 한 해를 일컫는다.

뿌려진 씨앗이 움을 틔워 따가운 여름 햇볕에 무럭무럭 자라다가 수확의 낫질을 거쳐 창고로 옮겨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이 계절을 적는 한자가 추(秋)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인위적인 가름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동양은 자고(自古)로 네 계절에 색깔과 방위(方位)의 관념을 입혔다.

봄은 푸르다고 해서 청춘(靑春), 여름은 더움을 뜻하는 붉음이라고 해서 주하(朱夏), 가을은 흰색이어서 소추(素秋), 겨울은 검다고 해서 현동(玄冬)이다. 푸르고 붉고, 희고 검은 색이 각각 동남서북(東南西北)의 방위를 나타내기도 한다.

가을을 일컫는 한자 단어는 특히 발달했다. 서쪽의 기운은 차가운 쇠(金)다.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동양 고대 다섯 가지 음(音) 중에서는 상(商)이 가을을 대표한다고 여겼다. 여기다가 색깔까지 입혀서 만든 가을의 단어들은 금추(金秋)·금상(金商)·금소(金素)·상추(商秋)·상소(商素)·백상(白商)·소상(素商) 등이 있다.

각 계절은 세 단계로 나누는데, 보통 맹(孟)·중(仲)·계(季)다. 초가을 맹추(孟秋)의 별칭은 수추(首秋)와 상추(上秋)다. 중추(仲秋)는 중상(仲商), 늦가을 계추(季秋)는 모추(暮秋)·말추(末秋)라고도 한다.

세월의 흐름을 가장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계절이 가을이다. 가고 오는 더위와 추위, 즉 한래서왕(寒來暑往)의 기후적인 변화에서 한 해의 끝을 예감케 하기 때문이다. 그 가을에는 거둬들여 숙성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을을 수성(收成)의 계절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사회의 올해 가을은 어떤 모습일까.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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