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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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호 29면

한국 증시의 고질적 저평가를 의미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로선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김광기의 시장 헤집기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 한국 주가가 폭락하면서다. 2000년을 전후해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주주 행동주의자들이 “재벌의 낙후된 기업지배구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야기됐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익숙한 경제용어가 됐다. 때마침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했던 정부도 이 용어를 즐겨 사용했고, 자연스레 언론과 증권사 보고서의 헤드라인을 자주 장식하게 됐다.

외환위기 이전을 돌아보면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였다. 당시 외국인의 국내 주식투자가 법으로 제한됐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높은 웃돈을 지급해야 한국 주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한국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공식 루트였던 해외 전환사채(CB) 등에는 1980년 말 국내 원(原)주식의 가격에 대비할 때 100~150%의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코리아 프리미엄은 92년 증시 개방 이후 점차 줄어들었지만, 외환위기 직전까지도 5~10% 남아있었다. 주식값의 비교 잣대로 쓰이는 주가수익비율(PER)을 봐도 80~90년대 한국 증시는 15~25배를 오르내려 당시 미국 증시(10~20배)보다 오히려 높았다.

현재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대략 30%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한국 증시의 PER(9배)과 해외 증시의 PER(평균 12배 선)을 비교해 나온 계산이다. 그 원인에 대해선 ▶남북한 대치 ▶기업지배구조 취약성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 ▶경제의 과도한 대외의존도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그중 북한 리스크를 제외하고는 논란이 분분하다. 기업지배구조만 해도 재벌식 오너 경영이 특유의 리더십과 빠른 의사결정을 인정받아 프리미엄 요소가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개별 요인들보다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총체적 성장통이 아니냐’는 해석도 설득력 있게 대두된다. 신흥국 대열의 고성장 프리미엄을 잃었지만, 선진국 대열의 안정적 성장 프리미엄은 아직 확보하지 못한 어중간함의 푸대접이란 분석이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견제와 편견도 작용하고 있을 법하다.

과거 미국도 그랬다. 미국이 1860년대 신흥 산업국으로 떠올라 1900년대 초 선진국으로 진입하기까지 통한(痛恨)의 ‘아메리카 디스카운트’ 시대가 있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중심지였던 유럽의 금융자본가들은 “미국 경제는 아직 멀었다”며 미국 기업의 주식과 주정부의 채권을 후려쳐 할인 거래했다. 아메리카 디스카운트는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대접을 받게 된 뒤에야 완전히 해소됐다.

요즘 파이낸셜 타임스(FT) 등 해외 언론이 신한지주 사태 등을 거론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잇따라 부각시키고 있다. “너희는 아직 멀었다”는 비아냥도 감지되는 듯하다. 어쩌겠는가. 기분 나쁘지만 말인즉 옳으니. 우리 스스로 실력을 더 키우고 고칠 것은 확실히 고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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