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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상상도 못한 시간당 100mm 물폭탄…수도 심장부 잠기고 지하철까지 멈춰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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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3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에서 지하 1층 카페를 운영하는 오강석(51)씨는 물에 잠긴 집기들을 치우고 있었다. 오씨는 “서울 도심 한가운데 홍수가 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추석 연휴 첫날인 21일 서울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오씨의 가게는 허리까지 물이 찼다. 에어컨·냉장고 등 가전기구는 모두 고장 났고, 소파·식탁도 물에 젖어 못 쓰게 됐다. 오씨는 “광화문에서만 12년 장사를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오씨의 가게뿐만 아니라 세종로 사거리 근처 지하상가는 크고 작은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구청 등에 복구대책을 요구할 상가협의체가 없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이런 피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첫날인 지난 21일 ‘수퍼홍수’가 도시를 삼켰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침수된 서울 지하철 4호선 신용산역. 물에 잠긴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신흥동 경인고속도로 부천IC 밑 도로. 담장이 붕괴된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한우리아파트. [안성식 기자], [연합뉴스]

이날 서울 지역 하루 강수량은 259.5㎜로 9월 하순 강수량으로는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8년 이래 가장 많았다. 특히 이번 비는 시간당 70~100㎜까지 집중적으로 쏟아져 배수시설이 감당해 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수퍼 도시홍수’가 발생한 것이다.

홍수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하천홍수와 연안홍수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도시홍수는 ‘물이 빠져나가지 못해서 도심이 침수되는 것’을 의미한다. 광화문광장과 인근 도로가 갑자기 물에 잠긴 것은 도시홍수의 한 사례다.

연세대 조원철(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는 “도로와 인도의 경계인 연석의 높이(25~30㎝)보다 높게 물이 차 오르면 극심한 도시홍수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번 홍수는 이런 수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인구와 주요 시설이 집적된 도시에서 발생한 홍수는 순식간에 막대한 피해를 낳는다. 추석 연휴 수도권의 수퍼 도시홍수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했다. 수도권의 주요 도로 47곳이 통제됐다. 올림픽대로나 남부순환로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까지 물에 잠겼다.

도시홍수로 인해 주요 전철도 멈춰 섰다. 정전피해도 속출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는 21일 오후 낙뢰를 맞은 변압기가 작동을 멈췄다. 수족관이 정전되면서 10시간 넘게 가동을 멈춰 물고기와 조개 등 해산물이 집단 폐사했다.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지하에 설치된 대규모 배수시설. 한꺼번에 18만t 이상의 물을 처리할 수 있다.

홍수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는 수퍼 도시홍수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배수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올 8월 도쿄에서는 집중 호우로 인한 도시홍수가 발생했다. 일부 도로변은 무려 1m20㎝ 높이까지 물이 차 올랐다. 하지만 도심 전체가 마비되진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은 도시홍수에 대비해 거대한 배수시설을 건설해 놓았기 때문이다. 방재시설 중에는 길이 177m, 폭78m, 높이 18m에 이르는 축구장 두 배 크기의 거대한 지하 배수로도 있다. 이 시설은 18만t의 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수퍼 홍수가 한국에서는 먼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통계를 보면 그렇지 않다. 기상청에 따르면 1일 80㎜ 이상 집중 호우가 발생하는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1970년대에는 연간 1.8일이었지만, 2000년대에는 2.6일에 이른다. 그만큼 도시홍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조원철 교수는 “지난 겨울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던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해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서울처럼 인구·건물 등이 고집적화된 도시일수록 피해가 크기 때문에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글=김효은·박정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수퍼 도시홍수=도시홍수는 배수시설이 폭우를 감당하지 못해 도심이 물에 잠기는 현상을 말한다. 버스 정거장이 5cm 이상 물에 잠기면 도시홍수라고 할 수 있다. 이번처럼 25㎝ 이상 물에 잠겨 도로·지하철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마비되는 상태를 수퍼 도시홍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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