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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가 본 한국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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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이렇게 칭찬할 때마다 맘이 불편했다. 국내에서는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휜다느니, 공교육이 무너진다느니 하며 난리인데 그가 정말 제대로 알면서 하는 말일까 생각했다. 얼마 전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 교육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던 차에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이 이달 중순 미국 신문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에 쓴 한국 교육에 관한 글을 관심있게 읽었다. 글에선 루게릭병으로 사망한 그의 대학 은사 모리 슈워츠 교수의 목소리가 묻어났다. 모리의 말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면서 반쯤 졸면서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당신, 그래서 행복한가”라고 나지막한 어조로 묻고 있는 듯했다.

앨봄은 오바마의 한국식 교육개혁론을 좀 순진한(naive)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공부시간 더 늘린다고 꼭 좋은 것도 아니고, 게다가 시스템이 다른 미국에선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다.

이달 초 방한했던 그가 일주일간 겪고 들은 한국의 교육은 이랬다. “한국 학생들에게 학교는 풀타임 직장과 풀타임 결혼생활을 합친 것 같다. 주말 없이 밤낮으로 공부한다. 한밤중에 교복 입은 학생 보는 게 한국에선 이상하지 않다. 일출부터 일몰 이후까지 운영되는 학교교육 때문에 하루 세끼를 한 건물에서 해결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기에선 응원단 구호도, 자존감을 키우는 강의도 들을 수 없다.”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을 배우라고 했지만 정작 ‘우습게도’ 대부분 한국 아이들은 부와 지위를 얻고 출세하기 위해 영어 잘하는 미국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한국 언론이 ‘어떻게 하면 한국 아이들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을까’를 도대체 작가인 자신에게 왜 묻는지도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미국에선 그런 질문, 잘 안 나온단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남보다 앞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 공부 못하면 좋은 대학 못 가고, 그러면 좋은 직장을 얻지 못해 인생의 루저가 된다고 불안해한다. 이런 모습이 20세기 초 미국 이민자들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한국 청소년들은 앨봄에게 “성적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공감해 주고 인성을 키워주는 모리 같은 스승을 만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앨봄은 한국과 미국 교육은 서로 환경이 다르다고 점잖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언급이 오래도록 가슴을 때렸다. “미국 아이들은 더 많이 웃고, 더 많은 운동을 즐기며, 더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한국 아이들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고, 오직 성공의 외길로 내몰리고 있다.”

자녀교육 문제에 관한 한 좌우가 따로 없이 남다른 교육열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라는 주장과 이에 대한 한탄이 나오는 요즘, “2등이면 어때?”라고 미소 짓는 모리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