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사랑] 유학생 동거의 양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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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마저 이웃집 드나들 듯 선진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글로벌 시대다. 아무리 유학생 수가 늘어나도 자녀를 먼 나라로 보내는 부모의 불안함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할 것이다.

툭하면 일어나는 총기 사고와 만연한 프리섹스 사조가 부모들의 주된 고민거리다. 특히 딸 자식이 해외에 있다면 부모의 걱정은 더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미국 여행 중에 만난 한국인 여대생은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었다. 그녀는 “나 말고도 많은 친구가 동거한다”고 말했다.

또 영어 연수를 받던 한 교포의 자녀가 치료가 시급한 성병에 걸려 귀국 편 항공기에 몸을 싣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상당히 지독한 병이었기에 지금쯤 불임이 되지 않았을지 걱정을 종종 한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미국 남녀 대학생들은 동거 자체에 별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성적 필요에 의해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학위 취득 후 헤어지는 예도 많은데, 별 문제없이 결별할 수 있는 이유는 ‘적정 시기에 헤어지자’고 약속한 동거계약서 때문이다. 이 계약서에는 헤어지는 시기, 만약 임신됐을 경우 대처법 등을 적어 놓는다.

동거계약서가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된 까닭은 『동거를 위한 해설사』란 책 때문이다. 이 책은 랄프 워너와 토니 이하라는 젊은 남녀 변호사가 지은 책으로, 이들이 직접 동거하면서 경험한 사례를 자세히 풀어 놓았다. ‘동거 지침서’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다.

가령, 남의 집에 세를 들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부터 은행 예금의 명의는 누구 앞으로 하는가, 만약 어느 한쪽이 죽으면 받게 될 유산의 처리문제 등을 친절히 설명해 놓았다.

대체로 우리의 상식과 일맥상통하는 해설을 보게 되지만, 은행 예금통장의 명의에 관해서 만큼은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다.
“두 사람 명의로 하나의 계좌를 가지려는 커플에게 드리는 우리의 충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절대로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쪽의 사인만으로 예금을 찾아갈 수 있게 되어 있다면, 다른 한쪽이 송두리째 들고 도망쳐도 은행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란 게 그 이유다. 덧붙여 “실제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다”고 나와 있다.

또 두 사람이 여행 중 호텔에 묵을 때 부부인 척하고 숙박부를 쓰면 현행법에 저촉되는가 등 까다로운 문제도 망라돼 있다. 너무 성가신 문제가 많아 차라리 결혼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은 나중에 생길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서는 동거계약서의 필요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앞서 제기했던, 예상되는 문제점을 사전에 정하란 것이다.

『동거를 위한 해설사』로 인해 동거생활 중 발생하는 트러블은 줄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남녀 대학생 동거자 수는 늘었다고 한다. 예컨대 동거 중 여성이 임신 하더라도 남녀가 동거계약서대로만 움직이면 돼 서로의 심리적 부담이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많은 남녀가 임신을 계기로 더욱 끈끈해져 결혼하는 예도 많다는 것이다. 애초에는 친구처럼 생각하고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서로 간에 풋풋한 정이 생겨 결국 해피 엔딩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동거는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기보다 갈등을 유발할 여지가 있다는 학자들의 의견이 있다. 결혼은 신뢰와 사랑을 토양으로 자라는 장미 같은 것이므로, 그것 없이 동거의 연장선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동거는 주위 사람들에게 큰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거 커플을 파티에 초대할 때 두 사람을 함께 초대할 것인가, 두 사람을 일반 부부와 동등한 수준에서 예우할 것인가. 아니면 각각 미스와 미스터로 구분해 호칭할 것인가, 성가신 문제가 많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곽대희 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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