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김종수의 세상읽기

쌀 대풍에 드는 걱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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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다급해진 정부는 올해 생산되는 쌀 가운데 수요를 초과하는 40만~50만t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수매로 시장에 쏟아지는 쌀 공급을 줄여 값을 떠받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쌀값 하락세는 좀체 멈출 기색이 없다. 정부 수매(시장 격리)만으로는 수요보다 공급이 넘치는 구조적인 불균형을 해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처치 곤란인 재고물량만 늘려 장기적으로 쌀값 하락 압력을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쌀 재고는 149만t으로 적정 비축량 70만t의 두 배가 넘는 데다 새로 50만t을 사들이면 더 이상 쌓아놓을 곳도 없는 실정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추가 비축분 50만t에 해당하는 재고미를 가공용으로 처분한다 해도 과잉 재고를 털어낼 방법이 없다.

그러자 농민단체들은 대뜸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 이전인 2007년까지 해왔던 것처럼 매년 40만t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면 쌀 재고 부담도 덜고, 국내 쌀값의 폭락사태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마침 북한은 올해도 냉해와 수해, 그리고 비료 지원 중단으로 극심한 쌀 흉작과 대규모 쌀 부족 사태가 예상된다고 한다. 오죽하면 원수나 다름없는 이명박 정부에 대놓고 손을 벌리고 나섰을까. 그렇다면 대북 쌀 지원이야말로 국내 쌀 공급 과잉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굶주림에 고통 받는 북녘의 동포들을 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묘책(妙策)이 아닐 수 없다. 야당도 농민단체의 대북 쌀 지원 재개 주장이 솔깃했는지 남아도는 쌀로 북한 주민을 돕자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대북 쌀 지원을 국내 쌀값 안정을 위한 방편으로 쓰자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질 않는 데다, 장기적으론 국내 쌀 농가의 자립을 막는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우선 국내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주자는 것은 정부가 쌀을 수매해 시장과 격리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두 가지 모두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사들여 공급을 줄이는 것이고,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 모두 국민 세금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은 정부 수매는 사들인 쌀을 남한의 창고에 보관하는 것이고, 대북 지원은 북한에 무상으로 준다는 것뿐이다. 농민들이 원하는 것이 쌀값 안정이라면 어떤 방법이든 쌀 공급을 줄여 달라고 하면 그만이지, 국민 세금으로 사들인 쌀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까지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쌀값 안정과 대북정책은 지향하는 목적과 동원되는 수단이 다른 전혀 별개의 정책이다. 국내의 쌀 수급 문제는 북한의 기근 여부와 관계 없이 국내에서 경제적으로 해결할 문제이고, 대북정책 역시 국내의 쌀 작황과 무관하게 결정될 문제다. 만일 북한이 남측의 쌀 지원이 필요 없다고 하면 그때는 남아도는 쌀을 어쩔 것인가. 또 우리의 대북정책상 판단에 따라 식량 지원을 하겠다고 결정하면 외국에서 쌀을 사서라도 지원하는 것이지, 국내에 쌀이 남으면 주고 모자라면 안 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결국 일부 농민단체나 야당이 굳이 대북 쌀 지원을 주장하는 것은 순수한 국내경제 문제를 무리하게 대북정책과 연계함으로써 정부와 국민의 판단에 혼선을 빚는 처사다.

또 대북 쌀 지원을 쌀 수급의 고정변수로 삼는 것은 쌀의 과잉 생산을 고착화시켜 장기적으로 쌀 농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생력을 훼손하는 일이기도 하다. 쌀 공급과잉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쌀 수요는 계속 주는데 공급이 늘면 값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언제까지나 정부가 국민 세금으로 쌀값을 지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다 인위적으로 대북 쌀 지원분만큼의 수요를 국민 세금을 들여 유지한다면 구조적인 초과공급 구조 개선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우리 쌀 농가의 운명이 북한의 손에 좌우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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