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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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난달 하순께 인도네시아에서도 가장 지진해일 피해가 엄청났던 반다아체 지역에 다녀왔다. 거기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명색이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 친선대사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젊어서 못볼 것도 많이 봤으니 남아 있는 날은 좋은 것만 보며 살고 싶다 해도 과히 얌체짓은 안 되려니 했다. 참상을 볼 게 뻔한 일이어서 내키지 않는데도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 것은 내가 앞으로 좋은 일을 하면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은 늙은이 특유의 엄살(?)이 객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반다아체 주정부 청사, 각 관공서와 주택가가 있던 한 도시가 완전히 괴멸한 무인지경에 이르러서는 정말이지 거기 온 걸 후회했다. 훗날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면 내가 거기 뭣하러 있겠는가. 받아본 자료는 더 무서웠다. 방문일이 바로 해일이 있던 날로부터 한 달 되는 1월 26일이었는데, 그날까지 그 지역에서 인명피해만 행방불명을 포함해 20만명이 넘었다.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만들고 5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9.11 테러 생각이 났다. 매일매일 그만큼 죽는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한가. 20m가 넘는 바다의 벽이 서너 번을 들어왔다 나갔다는 그 지역은 내가 보기에도 살아 있는 생명이 아직까지 묻혀 있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 그런지 폐허를 뒤지고 다니는 사람도 울부짖음도 없이 다만 괴괴하고 허허로웠다.

없어진 도시보다 거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어떡하고 있을까 그게 더 걱정이 되었다. 사람 나고 도시 났지, 도시 나고 사람 난 건 아닐 테니까. 자식을 땅에 묻고도 그날 밥을 먹을 수 있는 독한 게 인간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부모와 자식이 사라지고, 믿고 의지하던 친척이나 이웃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살아오면서 낯익혀온 모든 것을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과연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정상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 경험해보지 않았어도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건 왜 인간이냐고 묻는 것과 같다.

그날 밤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번성했던 도시가 순식간에 사라진 자리는 세월이 어루만지고 지나간 폐허하고는 또 다르다. 자연도 그가 저지른 일을 보고 너무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물이 콘크리트와 철근을 그렇게 산산이 부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는 마음은, 내가 견고하다고 믿어온 고국에 두고 온 나의 삶의 터전은 과연 안전한가, 거기 아직도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하는 공포감으로 이어졌다. 공포와 불안, 숙소의 무더위 때문에 전전반측 잠을 못 이루는데 새벽녘에 침대가 가볍게 너덧 번 흔들렸다. 말로만 듣던 여진이었다. 겁이 났지만 한 지붕 밑에 안성기(친선대사.영화배우)처럼 착한 사람이 같이 자고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고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자연재해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려서 닥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토록 확실히 본 뒤건만 착한 사람은 가까이만 있어도 그렇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우리도 재해를 당한 그 많은 이재민, 특히 어린이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착한 나라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혹은 훗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퍼주는 나라 말고 우리 각자의 착하고 따뜻한 마음을 참지 말고 표현해 살아남은 이들에게 힘이 되고, 특히 어린이에게 착한 나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다음날 유니세프가 하고 있는 구호사업의 현장을 방문했다. 그 지역은 주정부의 기능 자체가 마비돼 긴급구호뿐 아니라 행정적인 일도 겸하고 있었다. 인명구조 다음으로 급한 일을 위생과 방역, 어린이의 건강, 교육, 가족 찾기 등에 두고 맹활약하는 유니세프와 세계 도처에서 달려와 그런 일에 발벗고 나선 우리의 젊은 의사.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는 데 자부심을 느꼈다. 같은 날 난민캠프에서 막 태어난 신생아의 얼굴에서 천사의 웃음(배냇짓)을 보고 나도 처음으로 활짝 웃을 수 있었다. 그래도 삶이 계속된다는 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박완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