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부모 명성을 즐기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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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면

기분 좋은 얘기와 기분 더러운 얘기가 있는데 뭘 먼저 들으시겠습니까? 그렇죠. 기분 좋은 거 먼저 하겠습니다.

괴산우체국 얘깁니다. 순직한 우편집배원의 장녀가 아버지가 일하던 우체국에 특별 채용됐다는 겁니다. 아버지는 우편물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과 충돌해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스물여섯 살 딸이 졸지에 어머니와 두 동생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됐지요. 다행히 우정사업본부에 일정한 자격증을 갖춘 국가유공자 자녀의 기능직 특채 규정이 있었습니다. 딸은 몇 달을 공부해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땄고 괴산우체국에 특채될 수 있었습니다. 우정사업본부에는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집배원이 400명가량 되는데 그 자녀가 우정사업본부에 채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놀랍긴 하지만 아무튼 참 다행이고 잘된 일입니다.

기분 더러운 얘기는 말 안 해도 아실 겁니다. 장관 딸을 특채하기 위해 한 나라의 정부 부처가 작당 모의를 했습니다. 딸의 스펙에 맞게 지원 자격을 바꿨고, 더 우수한 사람들을 들러리로 세웠습니다. 자기가 수장으로 있는 조직에서 한 명 뽑는 자리에 딸이 지원하겠대도 말리는 게 상식인 것 같은데, 아버지는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당연하다는 듯 “장관 딸이라 더 엄격하게 심사했다더라”고 너스레를 쳤습니다. 그런 시대착오적 음서(蔭敍)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지만 외교부 특채가 외교관 자녀의 등용문 역할을 해왔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외교부만 그런 게 아니란 겁니다. 왜 아니겠나 싶지만 참 더럽고 열 받는 일입니다.

같은 특채인데 어떤 건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고 어떤 건 가슴에 불을 지릅니다. 차이가 뭘까요. 원래 특채란 게 많은 사람들 기분을 좋게 해야 기본 취지에 맞는 걸 겁니다. 공채로 모자라거나 지나친 점을 보완하자고 만든 게 특채 아닙니까. 훌륭한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모자라거나 지나친 부분을 더하거나 뺄 수 있다면 여러 사람 기분 좋아질 게 틀림없습니다. 자연히 사회와 국가 발전도 따를 테고, 사람들 기분은 더욱 좋아질 겁니다.

그런데 늘 무따래기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길 닦아 놓으니 미친 X이 먼저 지나간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놔도 그것을 악용하는 훼방꾼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미친 X이야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훼방꾼들의 해악은 기분만 나쁜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제도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심각한 반사회적 범죄인 겁니다. 더군다나 제도를 조이고 기름 칠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제도 파괴에 앞장섰으니 용서할 수가 없는 겁니다.

가뜩이나 신뢰가 부족한 우리 사회입니다. 특권층에 대한 신뢰는 더욱 밭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며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아들딸에게까지 그런 호사 물려주겠노라 할 짓 못 할 짓 가리지 않으니 신뢰가 쌓일 틈이 없습니다. 믿음 없는 자리에서 자라는 독초인 갈등을 솎아내느라 해마다 몸살을 앓고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게 우리 사회 아닙니까.

사회의 신뢰 수준이 10% 올라갈 때마다 경제성장률이 0.8%씩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사회의 신뢰 수준을 10% 올리면 어림잡아 10조원 이상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인천공항을 2개나 만들 수 있는 큰돈입니다. 그런 가치를 얻는다면 젊은이들을 위한 질 높은 일자리들을 많이 만들 수 있겠죠.

결국 장관이 자기 딸을 위해 남의 집 딸 하나의 일자리만을 빼앗은 게 아니란 말이 됩니다. 이미 절망적인 청년실업의 탈출구에 문풍지를 덧대 그렇잖아도 숨 못 쉬는 젊은이들을 질식시킨 겁니다. 집배원의 딸 때문에 일자리를 얻지 못한 젊은이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대신 사회의 신뢰 수준을 끌어올려 다른 곳에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한 술 보태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은 겁니다.

지금의 더러운 기분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이 같은 반사회적 특혜를 얻을 기회가 왔을 때 홀연히 거부하십시오. 그런 특혜를 줄 수 있는 자리에 오르거든 뿌리부터 바꾸십시오. “자기 실력이 아니라 부모의 명성으로 존경받고 그것을 즐기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플라톤은 말했습니다. 자기로 모자라 자식에게까지 그런 부끄러움을 남겨주는 건 부모로서 할 짓이 아닙니다. 하물며 수치를 넘어 다른 많은 사람 기분 더럽게 만드는 사회적 패악인 경우야 두말할 게 없겠지요.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