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 좋고 공부 잘하는 아이 아빠하기 나름이라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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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일까요

‘Father Effect(아빠 효과)’ 영향력은 …

지태우(서울 중화초 4)군은 아빠 지영수(40·서울 상봉동)씨와 틈만 나면 놀이를 한다. 아빠와 관계가 좋은 자녀는 성적과 사회성 등이 좋다. [황정옥 기자]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은 1958년에 태어난 1만7000명을 대상으로 33세까지의 발달 과정을 추적해 발표했다. 아이가 성장하는데 어떤 환경적 요인이 작용하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이 발견됐다.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아빠와의 관계가 좋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김영훈 원장은 “자녀 양육에 있어 엄마와 아빠의 몫이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남자와 여자는 두뇌 구조가 다르다. 뇌량(좌·우뇌의 연결로)이 남자는 가늘고 여자는 두껍다. 좌·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가 많은 여자는 남자보다 좌뇌와 우뇌 간의 정보 전달이 빠르다. 이렇게 공감의 뇌를 가진 여자는 언어놀이 같은 언어교육에 적합하다. 반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아빠는 수학이나 과학 교육을 더 잘 할 수 있다.

특히 아들에게는 엄마가 해줄 수 없는 아빠만의 교육 효과가 있다. 『아들은 아빠가 키워라』의 저자 이충헌 KBS 의학전문기자는 “아들은 아빠와 뛰어 놀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아빠의 근육 힘을 직접 실감한다”며 “아들이 아빠에 대한 위엄과 권위의식을 느끼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스티븐 B. 폴터(임상심리학) 박사는 2007년 그의 저서에서 ‘24년간 가족관계를 연구한 결과 아빠가 자녀의 진로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김 원장은 “감성적으로 판단하는 엄마에 비해 아빠는 논리적이고 분석적이기 때문에 진로와 능력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캘리포니아대 로스 D. 파크(심리학) 교수는 ‘Father Effect(아빠 효과)’를 강조했다. 아빠와의 놀이나 상호작용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좌뇌를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영·유아기 때 아빠와 관계가 부족했던 아이들은 수리능력이 떨어지고 성취 동기도 낮다고 했다. 지적 발달의 초기단계인 감각운동행동(손을 뻗어 물건을 잡거나 사물을 쫓는 행동) 수치도 낮았다. 이 기자는 “한 살 이전부터 아빠가 남자 아이의 지능 발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구진은 ‘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아빠를 둔 아이의 언어 능력이 더욱 뛰어난 반면, 엄마의 언어 사용량은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씨는 “아빠가 자주 칭찬해주고 필요할 때 적절한 도움을 준 아들은 지능과 어휘 능력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 나이대별로 아빠 역할 달라져

아빠가 열심히 놀아준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다. 또 스스로 놀이를 주도할 줄 안다. 주어진 장난감으로 놀기보다 스스로 장난감을 선택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노는 것을 좋아한다. 아동가족상담센터 이보연 소장은 “아빠들은 아이들과 놀이할 때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때문에 아이의 적극성과 탐구정신을 키우고 사회성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발달 전문가들은 4세 이상의 아이는 아빠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육아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발달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한다. 특히 3~4세는 지적 호기심이 왕성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기로, 아빠는 아이에게 호기심과 다양한 욕구를 채워줘야 한다.

이 기자는 “15~23개월 사이의 아이 마음 속에 아빠의 상이 내재된다”며 “아빠가 남성성이나 사회성 등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빠 효과’를 위해서는 초등 저학년 이전에 자녀와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특히 초등 시기는 ‘사회적 뇌’가 발달하는 시기로 적절한 사회적 자극을 줌으로써 이를 도와야 하는데, 이때 아빠가 중심이 돼야 한다. 이 기자는 “자녀의 공부를 가르치기보다 목표를 세우고 실천하는 아빠, 멘토 같은 아빠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께 목욕하면 정서 발달은 물론 사회성 키워

아빠와의 놀이는 성장 속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평형감각의 자극을 즐긴다. 아이가 보챌 때 엄마가 안고 걸어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뛰고 빙빙 돌면서 평형감각을 자극하는 놀이는 안락감은 물론 뇌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녀의 창의력을 키워줄 수 있는 대표적인 놀이가 아빠와의 신체놀이다. 비행기 태워주기, 목마 태우기, 몸 그네 태우기 등 몸을 많이 움직일 수 있는 놀이다. 거칠게 놀면서 흥분을 하면 뇌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드레날린이 나온다. 이 기자는 “아빠와 부딪혀 놀면서 아드레날린에 익숙해지면 그만큼 스트레스에 잘 적응한다”고 말했다.

아이의 정서 발달을 위해 목욕을 함께 하는 것도 좋다. 이 소장은 “친밀감과 신뢰감은 사회성의 기반이 되는 감정으로 어려서 아빠와 목욕을 한 즐거움이 10여 년 후 자녀의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아빠의 희망사항 중 하나는 아이가 사춘기가 됐을 때 상담역을 하는 것”이라며 “하지만 사춘기가 되기 전 아이와 친해지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서 발달을 위해 24개월 이전에 아빠와 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와 정서 교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상담과 훈육을 할 경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아빠와의 친밀감이 없는 아이는 성장을 해도 아빠와의 정서적 공백으로 인해 잠재력을 키우거나 표현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며 “어릴 때 아빠와 공유했던 정서와 시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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