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특사 외교 + 신속한 리튬 추출 성공…미적대던 볼리비아의 마음을 흔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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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원 전쟁에서 한국은 서구 선진국은 물론 일본·중국에 비해서도 열세다. 그러나 볼리비아 우유니(Uyuni) 리튬 확보 경쟁에서 한국은 뒤늦게 뛰어들고도 일본·중국·프랑스에 한발 앞섰다. 한국이 자원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번 사례가 잘 보여준다.

한국이 볼리비아 자원 개발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건 2006년이다. 노후한 코로코로 구리 광산 재개발을 놓고 중국 기업과 경합 끝에 광물자원공사(KORES)가 사업을 따냈다. 대신 중국은 볼리비아 지질연구소에 5년 동안 기술 지원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계약을 착실히 이행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기술 지원을 차일피일 미루며 딴전을 피웠다. 볼리비아가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볼리비아는 우유니 리튬 개발사업에 한국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았었다. 돌파구를 뚫자면 고위급 채널이 필요했다. 주볼리비아 김홍락 대사는 본국에 특사 파견을 요청했다. 마침 남미 자원 외교 순방에 나선 이상득 의원이 대통령 특사를 자청해 볼리비아를 방문했다. 완강하던 볼리비아는 이때 처음 우유니 소금물 1만5000L를 한국에 주기로 약속했다. 우유니 개발사업에 한국이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볼리비아는 소금물을 주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이에 이 특사는 지난해 10월과 올 1월 두 차례 더 볼리비아를 찾았다. 그제야 볼리비아는 올 2월 소금물 300L를 보냈다. 그나마 나머지 1만4700L는 4, 5월 나눠서 줬다. 그러곤 8월까지 소금물에서 리튬을 추출하는 실험 결과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KORES와 포스코 산하 포항산업과학연구원·지질자원연구원으로 구성된 국내 연구진은 마침 바닷물에서 리튬을 뽑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설마 한국이 6개월 안에 실험 결과를 내놓을 수 있겠느냐’고 반신반의했던 볼리비아 정부는 지난달 12일 한국 컨소시엄이 첫 실험 결과를 발표하자 깜짝 놀랐다.

한국의 추격에 마음이 급해진 일본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했다. 그러나 때마침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가 실각하는 바람에 모랄레스 대통령의 방일이 무산됐다. 그러자 모랄레스 대통령은 직접 주볼리비아 대사관에 찾아가 한국 방문 가능성을 타진했다. 김 대사는 “한국을 방문하는 길에 한 단계 진전된 협정을 맺는 게 어떠냐”며 모랄레스 대통령을 설득해 새 MOU를 이끌어냈다.

라파스(볼리비아)=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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