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다나카, 오자와 쪽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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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4일 도쿄 이케부쿠로(池袋) 역 앞에 마련된 일본 집권당인 민주당 대표 경선 유세장. 다나카 마키코(田中真紀子·사진) 전 외상이 마이크를 잡았다. 마키코는 “정치란 결국 추진력과 결과”라며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郎) 전 민주당 간사장의 추진력과 정치 업적을 강조했다. 오자와의 최대 약점이자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측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불법 정치자금 문제도 피해가지 않았다. 마키코는 “자꾸 클린, 클린하는데 무슨 클리닝가게(세탁소)도 아니고…. 오래 살다 보면 인간도 신발 바닥도 더러워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마키코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 전 총리의 장녀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오자와의 권유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남성 정치인 못지않은 배짱과 다부진 체격, 트레이드마크이자 아버지를 빼 닮은 독설로 한때는 차기 총리감을 꼽는 여론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던 인물이다.

마키코가 다나카 전 총리의 혈육이라면 오자와는 정치적 의미에서 다나카의 황태자다. 다나카 밑에서 정치를 배운 오자와는 47세에 최연소 자민당 간사장을 맡으며 정계 실력자로 성장했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말엔 니가타(新潟)의 다나카 묘를 찾아 “선생님에게 지지 않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다나카 역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시절 록히드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고, 오자와는 그런 스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정치를 배운 인연이 묘하게 겹친다. 오자와는 본격적인 거리 유세를 앞두고 3일 스승의 딸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 언론들이 마키코의 오자와 지지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이유는 한 가지 더 있다. 2001년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경선 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보의 당선에 마키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걸걸한 목소리에 투박한 니가타 사투리를 섞으며 자민당 지도부를 비난하는 마키코의 지원 유세가 고이즈미 선풍을 일으키는 데 큰 기여를 했고, 고이즈미는 당선 뒤 마키코에게 외상직을 맡겼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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