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시대, 일본 소녀팬을 넘어서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2호 04면

방학을 맞아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보고 싶었다며 난리다. 잘 지냈니? 건강하지?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질문. “근데 소녀시대, 정말 일본에서 인기 있어?” 지난달 25일 일본 도쿄에서 데뷔 쇼케이스를 마친 ‘소녀시대(사진)’. 한국 언론들은 ‘일본 열도 정복’ 등의 표현을 쓰며 쇼케이스의 성공을 축하했다. 물론 일본어 노래를 한 곡도 발표하지 않은(9월 8일 첫 번째 싱글 ‘지니’ 발매 예정) 소녀시대가 첫 쇼케이스에서 2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았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이영희의 코소코소 일본문화 - ‘한류걸스’ 열풍이 지속되려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일본 시장에서의 성공 여부를 벌써 논하는 것은 무리 아닐까. 일본인들, 아직은 소녀시대를 잘 모른다. 하지만 미디어에서 유난스럽다 싶을 만큼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쇼케이스 다음 날인 26일 일본 방송과 신문은 ‘예쁜 다리(美脚) 아이돌’ ‘한국 걸 그룹의 대표주자’ 등으로 소녀시대를 묘사하면서 이들의 공연을 대서특필했다. 심지어 공영방송 NHK가 소녀시대의 일본 진출을 주요 뉴스로 다루는 바람에 “그게 그렇게 중요한 소식이냐”라며 항의하는 시청자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일본 미디어들의 ‘소녀시대 특별대우’를 보고 있자니, 소녀시대보다 앞서 일본에 건너와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는 ‘카라’나 ‘포미닛’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이 서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소녀시대의 진출과 함께 ‘한류걸스(韓流girls)’라는 신조어 역시 유행 중이다. 이 단어는 물론 한류 붐을 타고 일본에 진출한 한국 걸그룹들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류걸스’라는 말에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는데, 바로 ‘한류에 깊이 빠진 어린 소녀들’의 의미다. 신기하게도 소녀시대를 비롯해 현재 한국 걸그룹에 열광하는 이들은 일본의 젊은 남자들이 아니라 10∼20대의 젊은 여성. 아침 정보 프로 ‘도쿠다네’는 이처럼 어린 여성 한류팬들을 ‘한류걸스’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의 등장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배용준에게 빠진 엄마를 부끄러워하던 딸들, 처음엔 한국문화에 대한 반감이 컸다. 하지만 자꾸 접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생겼고, 이것이 ‘동방신기’ ‘빅뱅’ 등 남자 아이돌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해 한국음악 전반, 걸그룹에 대한 애정으로까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모닝구무스메’에서 ‘AKB48’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걸그룹들이 주로 남자들을 타깃으로 하는 ‘인형 같은 귀여움’을 주무기로 내세우는 데 반해, 한국의 여자 아이돌들은 소녀들이 동경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한류걸스’ 등장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예쁜 데다 실력도 뛰어나며, 자신감이 넘치고, 카리스마까지 갖춘 한국 걸그룹을 보고 일본 소녀들은 “멋지다”고 열광한다.

반면 해외 여행도, 낯선 문화와의 접촉도 귀찮아하는 일본의 ‘초식남’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한국 걸그룹은 예쁘고 노래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게다가 섹시해. 그런데, 그래서 무서워.” 도쿠다네는 일본에서의 ‘한류걸스’ 열풍이 일시적 신드롬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히트상품 배출과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일본 젊은 여성들의 지지뿐 아니라 걸그룹의 가장 충성스러운 팬층인 남성을 공략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일본 젊은 남성들이 한국문화에 대해 가진 막연한 반감을 한국 걸그룹들이 넘어설 수 있을까. 하긴 그 멋진 다리에 그 엉덩이춤이라면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까 믿어 보긴 하지만.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현재 도쿄의 한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이돌과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학업으로 승화 중.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