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노사 화합의 검은 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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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주공장 노조가 과거의 일부 정치인보다 더 썩었다는 소리에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겠습니다."

27일 만난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한 노조원은 노조 지부장의 '취업 장사'사건을 지켜보는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생활 여건이 어려운 구직자를 계약직 근로자로 채용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1년 연봉보다 더 많은 돈을 노조 지부장 등이 뒷돈으로 챙겼다는 점에서 노조의 부도덕성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며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노조 지부장 정모씨. 그는 2003년 6월 취임사에서 '정정당당 실천투쟁, 현장에서 한판 승부'를 내세우며 깨끗한 노조 운영을 다짐했으나 지난 25일 검찰에 구속됐다. 취업 희망자들을 착취한 사람이 어떻게 근로자의 대표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시민들의 지적은 접어두더라도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 잇따르는 비난 글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귀족노조, 노조망국" "현장에서 한판 장사했느냐" "노조 집행부의 차별과 착취가 더 무섭다"는 등의 노조원들의 질타가 그것이다.

기아차 노조원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도덕성을 상실한 일부 노조 간부와 이들 간부가 취업 장사를 통해 '떡 고물'을 챙기도록 묵인.방조한 생산현장 경영진의 야합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기자가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노조의 부도덕성 못지않게 회사 측의 도덕 불감증이 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광주공장 경영진은 노조에 계약직 사원 추천.채용권을 나눠주면서 '노사 화합'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회사의 인사 담당자는 브로커를 통해 취업 희망자들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영진은 광주 지역 유력 인사들이 청탁한 사람들의 경우 채용기준에 미달해도 대부분 뽑아줬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취업 청탁을 한 인사들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더 큰 잘못은 채용기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이들의 청탁을 들어준 회사 측에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강수 사건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