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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차별은 부당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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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유럽연합(EU) 시민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인종차별을 금지하고 자유로운 EU 회원국 내 이동권을 보장한 정책에 위배된다. EU 법은 범죄의 정도에 따라 추방해야 하며, 설사 그럴 경우라도 개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인들은 민족성을 근거로 한 집단 처벌이나 대규모 추방을 부당하다고 여긴다. 보안을 이유로 개인의 기본권을 외면한 채 로마를 싸잡아 내쫓는 건 우려할 만한 사태다.

소로스재단이 로마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해본 결과 로마도 기회가 주어지면 지역사회에 통합되길 원했다. 대부분의 로마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가정과 질 높은 자녀 교육, 가족을 부양할 일자리,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갈구한다. 그들이 사회에서 겉도는 것은 엄청난 차별과 고국의 가난 탓에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유럽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려면 EU가 로마의 포용을 위한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EU 시민들의 권리와 복지를 증진하는 근본적 책임은 EU 회원국들이 져야 한다. EU도 유럽 전체 계획을 통해 그런 노력들을 조장하고 협력시키며,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지난해 EU 집행위원회는 로마 등 소수민족의 주택 구입을 돕기 위한 자금 지원을 허용했다. 이런 지원이 교육·건강보험·고용 등으로 확대돼야 한다. 로마의 구조적 가난은 부실한 교육이나 실직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로마와 유럽 주류사회의 가장 큰 차이는 문화나 생활방식이 아니라 가난과 불평등에 기원한다. 일반 학교가 로마 어린이의 입학을 거부하는 건 유럽 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편견과 실패를 낳는다. 로마의 거주 지역을 제한한 것은 위생과 편의시설이 부족한 거대한 판자촌을 양산하고 있다. 21세기 수백만 로마의 비극은 유럽의 가치에 대한 조롱이며 유럽의 양심에 오점이 되고 있다.

로마의 비극은 강압적으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추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추방은 유럽의 가치와 법적 원칙을 파괴할 뿐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치유할 기회를 잃게 한다. 로마는 EU 내에서 가장 평균 연령이 낮고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유럽 최대의 소수민족이다. 유럽은 또 다른 잃어버린 세대를 허용할 수 없다. 이는 인권과 기본 가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평화와 사회 통합에도 중요한 문제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
정리=정재홍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