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반복되는 쌀 과잉, 근본대책이 절실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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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또 쌀값 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매년 반복되는 땜질식 처방이다. 올해 생산될 45만t가량의 햅쌀을 매입해 시장에서 격리하는 게 골자다. 쌀값 폭락을 막기 위해 급한 불을 끄고 보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대풍(大豊)이 이어지고 쌀 소비마저 줄어드는 구조적 요인을 감안하면 궁여지책(窮餘之策)일 뿐이다. 이대로 가면 야적(野積)된 쌀이 썩어나가는 것을 멀쩡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가장 시급한 일은 쌀의 조기관세화다. 올해 MMA(최소시장접근)에 따른 의무수입물량이 32만t에 이르고 2014년까지 매년 2만t씩 증가한다. 이미 국제 쌀 가격이 충분히 올라 합리적인 관세율을 매기면 수입쌀이 범람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내년부터 MMA 물량을 동결하려면 이달 말까지 우리 사회가 의견을 모아 국제사회에 통보해야 한다.

둘째로, 쌀 생산조정에 보다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쌀 직불제부터 대대적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쌀값이 하락해도 직불금으로 대부분 보상받는다. 여기에다 다수확종을 재배하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리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다. 이러니 쌀 생산량은 좀처럼 줄지 않고 쌀값 하락만 부추기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직불금 지급기준을 ‘목표가격’에서 ‘목표소득’으로 바꿔야 확실한 감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쌀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농가에 보다 화끈한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쌀 생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농업정책의 뼈대를 바꿔 나가야 한다. 언제까지 우리 농민들이 보조금과 지원금에 매달려 살 수 없다. 농업이 혼자 힘으로 일어서려면 서서히 시장원리와 경쟁을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다. 뉴질랜드는 1984년부터 농업보조금을 없애고 시장원리를 도입하면서 농업경쟁력이 높아졌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도 뉴질랜드를 찾았을 때 “우리가 배울 게 참 많다”고 했다. 그런데도 농업정책은 여전히 개혁될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다.

쌀이 남아도는데도 엄청난 물량의 외국 쌀을 비싼 값에 들여오고 있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 지원은 필요하지만, 이 또한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다. ‘벼를 재배하면 정부가 언제나 비싼 값으로 사준다’는 고정관념이 바뀌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는 고령(高齡)의 농민들이 도태되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입장을 버려야 할 것이다. 정치권도 농민표만 의식하는 포퓰리즘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루빨리 근본 대책을 마련하는 게 우리 농업을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