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민노총, 산하단체 타락에 왜 말이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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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기아차 노조의 채용 비리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 노조위원장의 사과에는 진정한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이 땅의 대기업은 다 마찬가지"라는 주장에는 섬뜩한 오기가 엿보인다. "(문제가 된) 생산직에게 불이익을 주는 어떤 도발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사퇴 성명엔 체질화된 오만함이 배어 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여태 진상조사단만 구성했을 뿐이다. 검찰은 민주노총이 2002년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의 채용비리 의혹을 조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비리 윤곽을 파악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다. 만약 민주노총이 환부를 알고도 덮었다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윤리적 타락이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대기업 생산직은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들 사이에는 대물림 징후까지 나타나고 있다. 어제 4년제 대졸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대기업 생산직으로 입사하고 싶다는 응답자가 76.3%에 달했다. 높은 연봉과 고용 안정, 칼 같은 근무시간, 적은 스트레스 등이 이유로 꼽혔다. 사오정.오륙도라는 유행어가 나도는 판국에 민주노총은 이미 '가진 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 기아차 생산직이 별 볼 일 없는 자리였다면 이번 비리는 애당초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투쟁의 날을 세우기 전에 민주노총은 스스로를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LG칼텍스 정유, 전국공무원 노조 파업 등이 모조리 실패한 이유는 간단하다. 책임과 의무에는 눈을 감고 자신의 권리만 내세우는 노조를 국민이 용납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이번 사건을 개인적 비리로 돌리거나 꼼수로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근로자를 팔아 치부한 최악의 도덕적 타락이다. 민주노총이 사회 발전의 걸림돌로 전락할지, 정말 근로자를 위한 단체로 다시 태어날지는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 있다. 치열한 반성과 자기 개혁이 우선이다. 환부를 도려내는 자정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