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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고래사냥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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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람들이 연간 1억t의 생선을 잡는데 고래도 이만큼을 먹어 치우니 어족이 씨가 말라요. 바다의 포식자만 못 잡게 해놨으니 어찌나 불어나는지…. 요즘 원양선단은 생선을 놓고, 다른 선단이 아니라 고래 하고 다툴 지경이라니까요.”

고래는 국제포경위원회(IWC)가 1986년 상업포경을 금지하면서 잡을 수 없게 됐다. 고래(古來)로부터 고래를 먹어왔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북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이 특수 목적의 쿼터로 잡을 수 있는 게 전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고래고기를 먹는다. 일본엔 도처에서 고래고깃집이 성업 중이다. 과학용 쿼터로 잡힌 고래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뒤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포항과 울산에 있는 고래고깃집들은 바다에서 그물에 걸린다거나 하는 사고로 죽은 ‘운 나쁜’ 고래들을 판다.

지금 동해가 고래천지란다. 1000여 마리의 고래가 떼를 지어 군무(群舞)를 펼치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10여 년 만에 돌아온 광경이다. 그러다 보니 불법 포획도 늘어나 해경이 골치를 앓고 있는 모양이다. 헬기까지 동원해 불법 어획을 단속해도 소용이 없단다. 그도 그럴 것이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니, 고래는 ‘바다의 로또’로 입지를 굳힌 지 이미 오래됐다. 막말로 걸리지만 않으면 불법처럼 이문이 남는 장사가 없다는데, ‘로또’가 눈앞에서 군무를 펼치는데 어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사람의 입맛을 법으로만 잡아두기는 힘들다. IWC의 목적도 무작정 보호가 아니라 ‘미래의 자원인 고래의 보존과 이용’을 위한 것이니, 미래를 살아야 할 인간이 굳이 고래를 먹는 입맛까지 잃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본은 합법적으로 과학용 고래를 2008년 851마리나 잡았다. 북유럽 3국이 상업 및 원주민 포경으로 잡은 수(728마리)보다 많다. 일본은 고래로 과학도 하고 레시피도 쌓고 있다. 법이 이렇게 ‘불공평한 현실’을 만들어냈다. 또 20여 년 전 멸종을 우려해 만든 법 덕분에 평화를 누린 고래의 수가 지금은 어족자원을 두고 사람과 경쟁할 정도로 불어났단다. 멸종 위기의 고래를 지켜냈으니, 이젠 어족자원을 지키기 위한 균형점을 찾아야 할 때라는 지적은 이래서 나온다. 상황이 바뀌면 법도 바뀌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고래를 잡는 건 불법이다. 우리 정부는 IWC에서 합법적 고래잡이 쿼터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와중에 불법포획이 기승을 부리면 ‘괘씸죄’에 걸릴까 봐 걱정이 많다. 불법은 이문도 크지만,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찮다. 합법적으로 고래를 잡을 수 있는 그날을 위해 아직은 ‘고래사냥’에 나설 때가 아닌 듯하다.

양선희 위크앤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