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미국을 웃기고 울린 '토크쇼 황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 자니 카슨이 1992년 5월 22일 진행된 '투나잇 쇼'의 마지막 녹화 현장에서 청중과 함께 울고 웃는 모습. [버뱅크 AP=연합]

미국에서 '심야 TV 토크쇼의 황제'로 불렸던 자니 카슨이 23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말리부 자택에서 사망했다. 79세. 토크쇼를 진행하면서도 담배를 즐겨 피웠던 그는 1999년 심장혈관 우회수술을 받았으며 2002년엔 폐기종이 발견돼 투병해왔다.

카슨은 62년부터 92년까지 30년 동안 미 NBC방송 '투나잇 쇼'를 진행하며 이름을 날렸다. 총 4532회의 쇼를 진행하면서 존 레논.폴 매카트니.무하마드 알리.리처드 닉슨 등 스타들과 정치인들을 즐겁고 편안하게 시청자들 곁으로 안내했다.

그는 특히 재치있는 애드리브로 유명했다. 한 출연자가 인디언 도끼를 남자 모습의 널판지 과녁에 던졌는데 우연히도 바지가랑이 부분에 맞자 "당신이(할례를 하는) 유대인인 지 몰랐다"고 말해 방청석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자신의 세 차례 이혼 경력을 화제로 삼아 "내가 결혼에 대해 충고한다면 이는 마치 타이타닉호 선장이 항법을 가르치는 셈"이라고 웃기기도 했다.

한 비평가는 이런 그의 쇼를 가리켜 "매일밤 취침 전에 우리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국가적인 감정 조절 장치"라고 평가했다. 평균 시청자는 1000만명에서 1500만명 사이였으며, 92년 5월 고별방송 때는 미국에서만 5500만명이 지켜봤다.

나이가 들어서도 소년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던 카슨은 오하이오주 코닝에서 태어나 네브래스카주에서 성장했다. 네브래스카대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으로 복무했으며 50년에 로스앤젤레스 방송계로 진출했다. 53년 '카슨의 지하실'이란 이름의 토크쇼를 처음으로 맡았다.

마술에도 재능이 있었던 그는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 사회를 여러차례 보는 등 각종 공연무대에도 자주 올랐다.

현역 시절 그의 연봉은 500만달러를 넘어 당시 이 분야의 최고를 자랑했다. 87년에 미 방송계 명예의 전당에 올랐으며, 92년엔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도 받았다.

그는 세 아들 가운데 한명을 91년에 자동차 사고로 잃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현역 시절 정열적으로 활동했던 그는 은퇴 후엔 매우 조용하게 지냈다. NBC방송 회장이 창립 75주년 행사 때 그를 초청했으나 응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누군가 생전의 그에게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토크쇼에서 중간광고가 나오기 전 흔히 했던 말을 던졌다. "I'll be right back(곧 다시 뵙겠습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고정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