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광부 33명, 지하 700m 매몰 17일 만에 모두 생존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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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그들이 살아 있습니다!”

22일(현지시간) 칠레 북동부 소도시 코피아포의 구리광산에서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군중을 향해 외쳤다. 그는 붉은 글씨가 적힌 메모지를 흔들어 보였다. 운집했던 군중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건너편 언덕엔 33개의 깃발이 올라갔다. 지난 5일 구리광산 붕괴사고로 매몰된 33명의 칠레 광부가 17일 만에 모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이날 광산을 찾은 피녜라 대통령은 구조대가 뚫은 탐사 구멍을 통해 매몰 광부가 전한 메모지를 직접 읽으며 “기적이 일어났다”고 감격했다. 수도 산티아고 거리엔 수백 명의 시민이 국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했다.

구조대는 매몰 광부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동안 수차례 탐사 구멍을 뚫었으나 번번이 허탕 쳤다. 광산 측이 만든 지하 갱도 지도가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2주에 걸친 구조활동에 성과가 없자 생존자가 없을 것이란 비관론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날 갱도 내 긴급피난처를 향해 뚫은 탐사 구멍에서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구조대가 내린 줄 끝에 비닐봉투에 담긴 메모지가 매달려 올라온 것이다.

메모지엔 “우리는 모두 무사하다. 갱도가 무너지기 직전 전원이 재빨리 긴급피난처로 몸을 피했다”고 적혀 있었다. 33명은 피난처에 비치된 비상식량과 굴착기로 판 우물에 고인 물을 나눠 먹으며 17일을 버텨냈다. 갱도에 남아 있던 조명기구도 우물을 파거나 탈출구를 찾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메모를 쓴 건 최고령인 63세 광부 마리오 고메즈였다. ‘사랑하는 아내 릴리아나에게’라는 편지에 그는 “단 한순간도 가족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적었다. 칠레 광업부 장관으로부터 남편의 편지 내용을 전해 들은 릴리아나 라미레즈는 “남편은 강한 사람”이라며 “반드시 살아 돌아올 줄 알았다”고 감격했다.

생존 확인에도 불구하고 광부 구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구조 책임자 안드레스 수가레트는 “광부가 있는 지하 700m까지 직경 66㎝의 구조 터널을 뚫자면 4개월은 더 필요하다” 고 말했다. 구조대는 터널을 뚫는 동안 탐사 구멍을 통해 식량과 물은 물론 전기와 통신장비도 내려 보낼 예정이다. 라우센세 골보우르네 광업부 장관은 “가급적 이른 시간 내에 매몰 광부와 가족이 서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는 5일 오후 8시30분쯤 수도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450㎞ 떨어진 코피아포시 인근 산호세 광산에서 발생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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