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개인투자자 증시 대탈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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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미국 ‘개미’들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있다. 올 들어 7월까지 개인투자자가 미국 주식과 펀드에서 빼간 돈은 331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을 제외하면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다. 더욱이 개인투자자는 지난달 주가가 오르는 와중에도 증시에서 돈을 뺐다. 7월 다우지수는 미국 기업의 실적 랠리가 이어지면서 7% 올랐다. 그럼에도 개인투자자는 증시에서 146억7000만 달러를 빼내 갔다고 뉴욕 타임스(NYT)가 22일 보도했다.

주식시장에서 나온 개인투자자 돈은 채권시장으로 몰렸다. 올 들어 7월까지 채권 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1853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이 추세라면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기록도 경신할 전망이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시장에서 채권시장으로 옮겨 가고 있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올 들어 만기 20년 이상 미국 국채는 투자자에게 2.1%의 수익을 안겨 줬다. 반면 다우지수는 2% 떨어졌다.

개인투자자의 주식시장 탈출이 구조적인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할 연령대가 되면서 위험한 주식보다는 안정적인 이자를 안겨 주는 채권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4000가구를 설문조사하고 있는 인베스트먼트컴퍼니에 따르면 주식에 대한 미국 가계의 선호도는 2001년을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35세 이하 연령대에서 두드러진다.

돈이 채권시장으로 지나치게 쏠리면서 채권 가격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채권 펀드인 핌코의 오너 빌 그로스는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2%에 근접했던 2008년 12월 “채권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부동산 거품 붕괴를 예측한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도 같은 입장이다.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도 지난해 주주에게 보낸 서한에서 “닷컴기업과 주택시장에 이어 미 국채에도 거품이 끼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채권 투자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오면 채권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 국채 수익률 하락을 예측한 티그리스파이낸셜그룹 아비 티옴킨 투자책임자는 “앞으로 우리가 걱정해야 할 변수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이라며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이 2%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물론 1년 안에 1%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채권의 수익률과 가격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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