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의 北核 시각차 좁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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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북한은 27일 평북 영변에 있는 방사화학 실험실을 재가동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우리 정부의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처음부터 한국 정부는 미국·일본과의 공조를 강조한다. 그러나 세계는 한국이 과거와 달리 가장 반미적인 국가가 됐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한국의 지도자들이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한·미 관계를 새로 짜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지도자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생각을 달리하고 있으며, 북한을 고립시키고 압박할 것이 아니라 포용과 대화를 계속하고 경제 협력과 교류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도 같은 분석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대담하게 벼랑끝으로 달려간 이유도 생각해보면 한국이 반대하는 한, 미국도 북한에 대해 군사공격 같은 과격한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미국과 한국의 핵 문제에 대한 생각 사이에 거리가 있다는 것은 한·미 간의 갈등을 이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니까 북한은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나가면 나갈수록 미국과 한국 사이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한국이 북한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 한·미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미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아는데, 한·미 관계의 기본 틀에는 손을 대지 않고, 핵 문제 공조 운운하면 우리의 신뢰도만 떨어진다.

한국과 미국이 공통된 상황 인식에서 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입장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북의 핵 문제를 한반도를 중심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는 세계질서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북한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비확산 체제 문제로 보고 있고, 구체적으로는 북한이 제조한 핵 탄두가 국제 암시장에서 거래돼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갔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핵 탄두가 가벼워지면서 숨겨 운반하는 것이 용이하게 돼 테러리스트가 미국 내에서 핵 테러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미국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반드시 북한의 핵 생산을 막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한국도 미국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

한국은 북한의 핵무기 생산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북한 핵 문제는 어디까지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반복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핵 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땅 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것도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우리 한국 국민의 바로 이와 같은 딜레마를 깊이 이해하고 대북 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논리를 몰라서 상호 모순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이 놓여 있는 상황이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적으로 한국과 미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협상테이블로 가면 북한이 1993∼94년과 마찬가지로 핵 포기의 대가를 요구할 것으로 보고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미국이 협상에 응하도록 설득할 수 있기를 원한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북한에 필요한 압력을 가하는 국제적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은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문제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조건에서도 북한을 고립시키든가 압력을 가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선언하는 것은 북한이 핵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양보도 할 필요가 없다고 보장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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