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증시결산]거래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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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올해 거래소시장의 출발은 산뜻했다.

지난해 미국의 9·11 테러사태 여파로 500선마저 무너졌던 종합주가지수는 이후 가파르게 올라 연초 700선을 넘어섰고, 4월 중순까지는 상승 탄력을 이어갔다.

4월 18일 연중 최고점인 937.61을 기록할 무렵 "연내 1,000선 돌파는 문제없다"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에 힘입어 '단군 이래 최대'의 실적을 올릴 것으로 전망됐고, 저금리 기조에다 시중에 부동자금이 넘쳐나는 상황이었기에 대세 상승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다. 이때만 해도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천3백원을 웃돌고, 국제 유가는 안정세를 보이는 등 제반 여건도 좋게만 보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복병은 예기치 않은 데서 튀어나왔다.

미국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서 더블 딥(이중 경기 침체) 우려가 다시 제기되는 가운데 엔론을 비롯한 미국 유수 기업의 회계 부정 파문이 불거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증시가 동반 침체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여기에 미국과 이라크 간 전쟁 우려까지 겹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해외 증시의 침체는 국내 외국인투자자의 자금 회수로 이어졌다.

2월부터 거래소시장에서 '팔자'로 돌아선 외국인의 매도 공세는 국내 증시 여건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칠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10월까지 계속됐다. 주가 등락에 키를 쥐고 있는 외국인이 2∼10월에만 5조원어치 가량의 물량을 쏟아내자 국내 증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매도 공세가 막바지에 달한 10월엔 600선마저 무너져 투자자의 한숨을 자아냈다.

11∼12월 들어 '사자'로 돌아선 덕분에 올들어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27일 현재 2조7천여억원 수준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어떻든 증시 개방 이후 처음으로 순매도를 기록하게 됐다.

외국인의 '사자' 전환에 힘입어 11월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둘 것으로 기대됐던 증시는 이번엔 북한 핵 개발 파문에 발목을 잡혔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주가가 강세를 보이곤 하는 '산타 랠리' 대신 급락 사태가 빚어진 것이다.

북한 핵 문제는 당분간 국내 증시를 짓누를 것으로 우려된다. 이에 따라 전통적으로 매년 1월엔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1월 효과'마저도 불투명해졌다. 이래저래 '외풍'에 시달린 한해였다.

차진용 기자

chaj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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