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국민연금 주주권 강화는 ‘양날의 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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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민연금공단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경영성과와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요주의 대상’ 목록에 올려 개선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주주권 행사 기준도 만들 작정이라고 한다. 사실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시도가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다. 국민연금의 숙원사업으로, 특히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국민연금은 줄곧 주주권 강화를 추진해 왔다. 집중투표제는 찬성하고, 이사의 시차임기제는 반대한다는 세부 지침까지 만든 적도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니다. 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 국민의 재산 가치를 높여야 할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도 있다. 지배구조 개선과 부실경영 예방을 통해 기업의 경영성과를 높인다면 국민의 노후생활이 윤택해질 수 있다. 외국 연기금들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주주권 강화에 반대하는 측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민간기업의 경영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규모가 너무 큰 데다 운용 주체는 사실상 정부다. 전체 주식시장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7%나 된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는 상장기업도 100개에 이른다.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 정부 산하 공공기관이라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사람을 민간기업에 이사로 참여시킬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를 적극 추진했던 이유 중 하나도 사실은 재벌 길들이기였다.

주주권 강화는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국민연금은 명심해야 한다. 주주권 강화의 순기능은 살리되, 역기능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가령 자산운용을 민간업체에 위탁하고 이 회사가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한다든가, 지배구조 개선 대상을 최소화하는 등 여러 방안을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민간기업을 장악하려 한다는 우려가 불식될 때 주주권 강화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