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전야 세계 표정]통금 풀린 베들레헴엔 성탄축하 북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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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스라엘군은 24일 성탄절 전야 미사를 앞두고 베들레헴 도심에서 시 외곽으로 일시 철수, 시민들이 성탄축하 행사를 열도록 허용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22일 베들레헴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이스라엘인 12명이 숨진 이후 33일째 베들레헴을 점령하면서 24시간 통금령을 실시해왔다. 이에 앞서 베들레헴시 당국은 이스라엘군 주둔에 항의하며 "예수탄생교회 건너편 구유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밝히지 않겠다"고 발표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러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베들레헴 방문은 여전히 금지한다고 발표해 팔레스타인 측의 격렬한 반발을 샀다. 이슬람 신도인 아라파트 수반은 베들레헴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관할 아래 들어온 1995년부터 서방세계와의 '화합'차원에서 매년 베들레헴의 성탄절 축하예배에 참석해 왔으나 이스라엘의 거부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다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통금령이 풀린 직후 베들레헴 시내 광장에는 성탄을 축하하는 북과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어린이들이 팔레스타인 깃발과 아라파트 수반의 얼굴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행진했다. 광장의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샤론이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죽였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이스라엘군 철수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최고의 성지로 매년 1백만명이 넘는 순례객이 들끓던 베들레헴은 24일 대부분의 상가가 철시, 유혈분쟁에 찌든 중동의 참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정에 교황청에서 열린 성탄미사에서 "세계 곳곳이 전쟁에 휩싸여 걱정스럽다"며 테러와 분쟁으로 얼룩진 현실을 개탄했다. 교황청도 "아라파트 수반의 베들레헴 방문을 불허한 이스라엘의 독단적 조치에 교황청 국무장관이 외교적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은 성탄절을 화려하게 보내려는 풍조가 두드러졌다. "9·11 테러로 침체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국민 정서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해석했다. 전통적인 트리장식 대신 집 전체를 전구로 뒤덮는 가정도 늘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복역수에 대한 사면과 감형을 단호히 거부하던 태도를 바꿔 24일 처음으로 죄질이 가벼운 7명의 형사범에게 성탄절 사면조치를 베풀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한 뒤 형사범에 대한 5백69건의 사면 요청과 2천1백4건의 감형 요청을 한차례도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올 한해 끝없이 이어진 테러는 성탄절조차 피해 가지 않았다. 24일 밤 인도네시아에서는 성당·교회를 겨냥한 폭탄테러 15건이 전국 9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최소 14명이 숨지고 1백여명이 부상했다. 필리핀 남부 도시 다투피앙에서는 시장 공관 근처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이 터져 시장을 포함해 최소 13명이 숨지고 12명이 부상했다. 파키스탄에서도 이슬라마바드 외곽 라왈핀디의 한 호텔에서 폭탄이 터져 8명이 다쳤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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