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25>골프팬은 한·일전의 노승열을 보고 싶지만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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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호 14면

그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PGA투어로 가는 지름길, 또 한쪽은 나라의 부름을 받아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길이다. 국가를 대표해서 뛰면 꿈에 그리던 PGA투어 카드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그렇다고 PGA투어 직행 티켓을 노리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한마디로 실리와 명예 가운데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그는 올해 19세의 프로골퍼 노승열이다.

노승열이 누군가. 그는 한국 남자골프의 미래다. 그에겐 ‘차세대 에이스’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16일 끝난 PGA챔피언십에서도 그는 멋진 활약을 펼쳤다. 타이거 우즈와 함께 공동 28위. 아시아에서 날아온 ‘뉴 키드’의 등장을 미국에서도 반기는 분위기다. 곱상한 외모의 미소년이 300야드가 넘는 장타를 펑펑 때려내며 PGA투어의 정상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데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더구나 우즈가 섹스 스캔들 이후 죽을 쑤면서 PGA투어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지난주 PGA챔피언십에서 활약한 덕분에 노승열은 이번 주 PGA투어 윈덤 챔피언십에도 초청장을 받았다. PGA투어 시드가 없는 그가 2주 연속 초청선수로 미국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미 KPGA투어와 유럽, 그리고 일본 투어 카드를 확보한 노승열이 세계 최고 무대인 PGA투어의 문을 두드리는 건 당연하다. 하루빨리 PGA투어에 진출해 우즈나 필 미켈슨 등과 샷을 겨뤄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음 달 10일부터 제주에서 열리는 한·일전(현대캐피탈 인비테이셔널 한·일 프로골프 국가대항전)에는 출전을 꺼린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한·일전은 6년 만에 부활한 빅매치다. 일본은 일찌감치 68세의 노장 아오키 이사오를 단장으로 선임한 데 이어 이시카와 료 등 최정예 멤버들로 대표팀을 꾸리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대회에 대한민국 대표선수로 선발된 노승열이 출전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유는 PGA투어 카드가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미국과 유럽 등 해외 투어의 남은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면 세계랭킹을 끌어올리게 되고, 그렇게 되면 지옥의 라운드로 불리는 퀄리파잉 스쿨을 거치지 않고도 쉽게 PGA투어 출전권을 따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한·일전엔 빠지고 해외 투어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다. 더구나 ‘최경주·양용은 선배는 빠져도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느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KPGA투어 사무국은 최경주와 양용은은 한·일전 대표선수로 선발했지만 두 선수가 PGA투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한·일전에 출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을 달아 놨다.)

어쩌면 인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그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오직 상금으로 평가받는 프로골퍼에게 국가대표의 명예만을 강조하면서 출전을 강요하는 것도 난센스다. 나는 그가 어떤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골프팬들은 노승열이 한·일전에서 이시카와 료를 멋지게 꺾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는 아직 열아홉 살이다. 올해가 아니더라도 PGA투어에 진출할 기회는 또 있다. 그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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