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폐업 컨설팅에 바빠진 이인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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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호씨(右)가 상가 앞에서 고객과 폐업 절차를 상담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요즘 외환위기 때 퇴직해 창업에 나섰다가 폐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찌나 고민을 했는지 얼굴이 누렇게 떠서 오는 분들을 보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폐업이 늘면서(2003년 기준 85만7033명, 전년대비 7.1% 증가) 부쩍 바빠졌다는'폐업 컨설턴트' 이인호(49)씨. 그의 본업은 창업 컨설팅이지만(www.changupe.com을 운영 중) 불황이 깊어지며 폐업 관련 일감이 더 늘었다. 폐업 컨설턴트는 법률.세무 정보를 제공하고 자산을 효율적으로 매각해 폐업으로 인한 손실을 최대한 줄이도록 돕는다. 이씨는 특히 폐업 상담에 그치지 않고 재창업을 통한 새 출발을 돕는데 주력한다. 폐업 후 권리금도 못 건지고 자포자기하는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2억여원을 들여 식당을 하다가 망한 뒤 수중에 1000만원 밖에 안 남은 분이 계셨어요. 그 돈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절망하지 말라고 격려했죠. 다른 가게 한 귀퉁이를 빌려 장사하는 이른바'숍 인 숍'을 제안했더니 그제야 표정이 밝아지더군요"

일부에선 남의 불행을 이용해 돈을 번다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씨는 실의에 빠진 이들의 재기를 돕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당장 돈 낼 형편이 안되는 폐업자의 경우 재창업 아이템을 정해 1~2년간 사업을 함께 펼치다 후불제로 성공 보수를 받는 일도 잦다.

1991년까지 LG산전에서 일하다 그만둔 이씨는 퇴직금 2000만원으로 옷 가게를 차린 것을 필두로 팬시문구점.갈비집.PC방 등 20여개 업종에 걸쳐 사업을 벌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98년 창업 컨설팅에 나섰다. "창업과 폐업을 되풀이하다보니 나름대로 요령이 생겼고 이 노하우를 나누는 것도 사업 아이템이 되겠다 싶더라"는 것이다.

그는"우리나라는 소비자의 취향이 빨리 변하고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자영업자의 생존 주기가 2년여 밖에 안된다"며 "여기에 맞춰 자꾸 사업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게 살 길이지만 직장 생활만 오래한 분들은 변화에 취약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초.중.고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한양대 경제학과)을 졸업할 때까지 안해본 일이 없다는 이씨는 현재 숙명여대.명지대에서 창업학 강의도 하고 있다.

신예리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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