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묵은 술창고서 익어가는 日 바이오 벤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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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에서도 꽤 알려진 양조업체 겟케이칸(月桂冠)의 1백년 묵은 양조장과 허름한 술창고는 교토(京都) 후지미(伏見)의 명물중 하나다. 1906년 건립된 2층짜리 목조건물은 고색창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관광코스로도 적격이다.

그러나 양조장 안은 겉과 완전 딴판이다. 방마다 설치된 컴퓨터 앞에서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다. 이곳이 교토의 '양조장 바이오 VIL'이다. VIL은 벤처 인큐베이션 랩의 약자로 갓 태어난 벤처기업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지원해주는 시설이라는 뜻이다.

교토시는 지난 8월 1천3백만엔의 예산을 들여 이곳에 VIL을 꾸몄다. 건물은 겟케이칸이 구식 술창고와 양조장 내부를 현대식으로 뜯어고쳐 9평짜리 사무실 8개를 만들었다. 방마다 광케이블을 깔고 컴퓨터를 설치했다.

그런 뒤 바이오 벤처기업에 3년 간 무료로 임대해주고 있다. 대신 업종은 바이오 인포머틱스로 한정했다. 바이오 인포머틱스는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의 상호관계 등을 규명하는 생명공학으로 실험시설보다는 고성능 컴퓨터가 더 필요한 분야다.

현재 겟케이칸 종합연구소와 교토대 바이오 인포머틱스 센터 등 기업 및 대학의 연구소와 미쓰이정보개발·니혼SGI 등 관련 벤처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이런 첨단 기업들이 굳이 케케묵은 술창고를 찾아들어온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비를 줄이고 유휴시설을 활용하자는 의도다. 또 이곳은 1909년 겟케이칸의 연구소가 있던 곳이라 첨단 생명공학 단지로서의 이미지에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하타 요지 겟케이칸 주임연구원은 "20세기 초만 해도 이곳이 일본 최첨단의 생명공학 연구소였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이곳에 분실을 차린 교토대 바이오 인포머틱스 센터의 가네히사 미노루 교수도 "생명공학과 양조장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며 "매킨토시가 창고에서 태어났듯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이 이곳에서 태어나기 바란다"고 말했다.

교토시는 교토를 생명공학의 본거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교토 바이오시티 구상'을 마련하고 수치목표까지 세워뒀다. 2010년 중 ▶교토의 바이오산업 매출 1조엔▶연간 특허출원 건수 5백건▶대학 내 바이오 벤처기업수 60사가 그것이다. '양조장 바이오 VIL'은 이 수치목표 달성의 전위부대인 셈이다. 여기에는 12명의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 중 7명이 교토에서 배출됐다는 고장 특유의 자신감도 배어 있다.

교토=남윤호 특파원

yh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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