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파문과 양당 대선 전략-이회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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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얼굴) 후보는 13일 울산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북한의 핵 시설 재가동 방침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서다. 李후보는 "북한이 무모한 벼랑끝 전술을 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은 삼갔다. 대신 그는 핵 문제에 대한 자신의 해결 능력을 강조하려 했다.

李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른 시일 내에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을 만나 핵 개발 포기를 강력히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만나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李후보는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수년간 미국·일본·중국·러시아를 순방하며 4강외교에 심혈을 기울였고, 4강의 정치지도자들과 깊은 신뢰관계를 쌓았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국제공조를 이끌어낼 외교 경험에선 저와 비견할 후보가 없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후보의 대북관에 대해선 직격탄을 날렸다. "盧후보는 북한에 검증을 요구해서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해선 안된다고 말하는데 지금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때"라며 "김대중 정권과 盧후보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엔 "북한의 핵 개발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는 현금 지원은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현금지원을 해선 안된다고 하던 정몽준 의원이 왜 盧후보와 손잡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한나라당은 북한 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가 막판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보수층의 위기의식을 자극하고,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집중 공격하면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이다. 李후보가 이날 울산·강원 유세에서 "대북(對北) 퍼주기 결과가 핵 위기냐" "북한이 핵으로 위협하고 있는데도 이 정권과 盧후보는 눈치만 보고 있다"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공세는 자제하는 모습이다. 역풍(逆風)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李후보가 "이번 일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신(新)북풍의 하나가 되지 않아야 하며, 정략적 고려에서 접근하는 것은 국민과 민족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핵 시설을 다시 가동하겠다는 북한의 선언, 즉 제네바 합의 파기가 5일 남은 대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선거 때마다 막판에 돌출한 '북한 변수'가 이번에도 등장한 것이다. 관건은 북한 핵 문제가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한 목소리로 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다짐하지만 둘의 대응엔 미묘한 차이가 엿보인다. 李후보는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햇볕정책을 비판했다. 盧후보는 기자회견 대신 유세를 통해 북핵 해결 의지를 밝혔다. 한나라당은 "핵 위기가 민심을 흔들고 있으며, 여론조사에서도 반영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아직 선거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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