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산호 억류 해제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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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계를 놀라게 한 서산호 억류사건은 11일 오전 6시(한국시간)쯤 CNN 방송이 "지난 9일 새벽 미국과 스페인이 인도양에서 북한 화물선을 나포해 현재 억류 중"이라고 보도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보도가 나오고 세시간이 지난 오전 9시 미 국방부가 나포 사실을 시인한 데 이어 이날 오후 8시40분 페데리코 트리요 스페인 국방장관도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측 정보에 따라 인도양 상에서 북한 선박을 나포·조사한 결과 스커드 미사일 15기를 싣고 있는 게 확인됐다. 선박은 중동의 한 항구로 예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1시간30분쯤 지난 오후 10시20분 예멘 정부는 북한에 스커드 미사일을 주문한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나 예멘 정부는 전날부터 화물선 나포 사실을 알고 미국에 집요하게 억류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부 바크르 압둘라 알 케르비 예멘 외무장관이 에드먼드 헐 예멘 주재 미국 대사를 소환해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 측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살레 대통령은 11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에게 무려 수십차례 전화를 걸어 ▶억류된 미사일은 2000년 북한으로부터 적법 구매한 미사일 중 마지막 인도분이며▶방어용으로만 사용하고▶제3국에 양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화물선과 미사일의 반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살레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도 전화로 불러내 같은 요구를 반복했다.

미국 측은 적법한 화물을 왜 나포하느냐는 예멘의 항의를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해 허점을 드러냈다.

'대어'를 낚기 위해 허둥댄 측면이 있었음을 인정한 미국은 "앞으로 북한 미사일을 절대 수입하지 않겠다"는 살레 대통령의 약속을 받고 반환 요구에 응했다. 이날 살레 대통령은 소낙비 오듯 파월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댔으며 파월 장관은 "오늘처럼 힘든 날은 별로 없었다"며 진땀을 흘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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