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산맥·수맥 끊긴 국토:명당은 없고 '錢堂'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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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명당(明堂)의 개념은 간단하다. 황제가 신하의 조하를 받던 앞뜰을 지칭하는 말인데 풍수에 넘어와서는 주산과 좌우의 청룡·백호, 그리고 앞쪽의 안산·조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겨울철이 춥고 북서 계절풍이 강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이런 명당은 당연히 주거 입지 조건으로는 적절한 곳이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명당의 설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런 정도라면 짐승들도 찾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명당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과 상징성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땅기운(地氣)에 의지해 드러내고자 하지만 지기라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19세기 영국의 한 선교사가 명당을 보고 느낀 후 드러낸 그의 심정이 상당 부분 명당의 함의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그는 말한다. "생명의 호흡(生氣)이라는 것은 말로써 표현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눈으로만 인식될 수 있을 뿐이다. 진정한 명당에는 비술적인 빛의 감촉이 있다. 그것은 오직 직관으로만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산은 밝고 물은 맑으며 태양은 아름답고 공기는 부드럽다. 별천지가 바로 이곳이다. 혼돈 속에 평화가 있고 평화 속에 흥겨운 기운이 있다. 그런 장소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눈이 뜨인다. 앉거나 눕거나 가슴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기가 모이고 정이 뭉친다. 중앙에서 빛이 비추고 비술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쳐나간다. 명당 바깥은 그렇지 않다. 이슬 방울같이, 진주알같이 갈라진 틈 사이로 흘러드는 달빛 같고 거울에 반사되는 영상과도 같다. 그것과 함께 놀려고 해도 붙잡을 수가 없다. 없애려고 해도 다 함이 없다.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장황하게 인용한 것은 명당에서의 느낌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다른 글에서는 찾아보지 못한 까닭이다. 과연 명당은 그런 곳이다. 문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온갖 사이비 신비주의자들, 사기꾼들이 풍수를 빙자해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땅의 처지는 어떤가? 공기는 탁하고 물은 더럽고 쓰레기는 곳곳에 흩어져 있다. 산골 밭에도 폐비닐이 펄럭이며 우리 또한 명당과는 거리가 멀다고 토로한다. 이제 명당은 없다. 국토의 혈맥이라는 강들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물질까지 운반하고 있고 척추인 산들은 곳곳이 끊겨져 있다. 무슨 명당인가. 그저 몸이 무너져내리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래도 유명한 땅(名堂)은 있다. 서울도 유명하고 수도권도 유명하다. 각종 휴양지와 유원지도 유명하다. 명산(名山)에 명당(明堂)이 없다는 것이 풍수 원칙이다. 그래도 명산은 유명하다. 그런 유명한 명당이 과연 풍수적 명당인가? 당연히 아니다.

땅값이 비싸거나 오를 가능성이 큰 곳도 유명하다. 그러니 명당이다. 돈으로 결판이 나는 명당. 그것은 돈이 주인인 땅(錢堂)일 뿐이다. 그 주인을 버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신이 서러울 뿐이다.

<풍수연구가·전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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