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미사일 선박 나포]美, 대북 강경제재 가능성 : 한반도 정세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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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의 북한 미사일 화물선 나포 사건의 파장이 심각할 것 같다.

북한의 새 핵 개발 계획으로 대립해온 북·미 관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됐다. 미국이 이라크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9·11 뉴욕 테러를 저지른 알 카에다 잔존 세력이 있는 중동 쪽으로 북한의 미사일 화물선이 간 만큼 미국은 '테러전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북한을 대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직 구체적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는 북한의 새 핵 개발 계획과 달리 대북 강경 카드를 빼들 수 있다. 미국 당국의 조사 결과 미사일 거래처가 테러 조직과 선이 닿아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북·미 관계는 최악의 국면을 맞게 될 것이 확실하다.

특히 이번 나포 사건으로 미국의 대북 신뢰는 땅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 예멘에 스커드 미사일 부품을 판매한 북한 창광신용회사에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한 가운데 다시 중동 쪽에 미사일을 팔려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상황에서 미국 행정부 내 매파들의 대북 강경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협상을 통한 북한 대량살상무기(WMD)해결을 어렵게 만들지도 모른다.

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미국의 북한 미사일 수출 증거 확보는 대북 제재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며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일 3국의 평화적 해결 방침은 미묘한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미사일 화물선과 관련한 북한의 반응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대북 제재에 착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북한에 "나쁜 행동은 보상받지 못한다"고 경고해온 부시 행정부가 이번에는 '행동'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1999년에 낸 보고서에서 북한 미사일 수출선의 공해상 나포와 외교 교섭 실패시 선제공격까지 제시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번 사건은 남북, 북·일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는 북한의 새 핵 개발 계획이 불거진 이후에도 어어져온 대화 국면이 지속될지 불투명하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대북 압박 분위기를 무시하기도 어렵거니와 "남북 대화가 북한 대량살상무기 해결을 위한 현실적 방법의 하나"라고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약하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확산에 대한 국내 보수층의 비판 여론도 부담이다.

북·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미사일 수출은 북한의 핵 개발 계획, 일본인 납치 문제의 미해결로 삐걱거려온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더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화물선 나포에 맞서 지난 9월 일본 측에 밝힌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 연기를 철회하면 국교 정상화 교섭 자체가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북한의 미사일 수출 움직임이 핵 개발 계획과 더불어 대미(對美)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나온 만큼 미국과의 일괄 타결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도 하고 있다.

오영환 기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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