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찰단, 美에 정면 반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유엔이 8일(현지시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실태 보고서 검토에 착수한 가운데 이라크와 유엔사찰단이 미국에 정면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명확한 물증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보고서는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비난만 계속하는 미국에 대해 "증거를 보이라"고 반박한 것이다. 미국 상원의원 일부도 "미국이 증거를 갖고 있다면 밝힐 때가 됐다"고 가세했다.

◇"증거 내놓아라"=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과학담당 보좌관 아메르 알 사아디는 8일 유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보고서는 정확하고 포괄적이며 진실하다. 미국이 반박하려면 증거를 (유엔에)제시하라"고 비판했다. 그는 "보고서에는 이라크가 20킬로톤(㏏)급 원자폭탄을 1990년 개발해 완성 직전까지 갔다가 포기한 사실도 포함됐다"고 처음 언급하는 등 조그마한 의혹까지 전부 공개한 '순정품'임을 강조했다. 사아디는 또 "보고서에는 일부 국가에 곤혹스런 사실도 포함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과거 몇몇 미국 기업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도운 사실을 암시한 것일 수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한스 블릭스 유엔 사찰단장도 이날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해 뭔가 알고 있다면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미 상원의 민주당 원내총무 톰 대슐 의원(사우스다코타주)과 정보위원장 밥 그레이엄(민주·플로리다주)도 "미국이 이라크 주장을 반박하려면 최상의 증거들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1962년 미국 정부가 쿠바 비행장에 늘어선 소련 핵미사일 사진을 유엔에서 공개함으로써 소련의 주장을 뒤집은 사실을 상기시켰다.

◇미 '비밀주의'우려=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증거 공개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에 대해 "확보한 물증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날 보도했다. 신문은 미국이 ▶이라크의 무기구매 내역 일부▶이라크 망명자들로부터 짜깁기한 정보 등 이라크의 주장을 무력화하기엔 빈약한 하급정보만 확보한 상태라고 전했다. 미국이 이처럼 증거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라크를 압박하는 '비밀주의'를 고수하면 "자의적으로 보고서를 평가해 정치적 결정(전쟁)을 내리려 한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고, 이라크 문제 해결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