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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쾌한 액션 팬터지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2면

지난해 말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를 내놓으며 할리우드의 기린아로 떠오른 뉴질랜드의 피터 잭슨(41) 감독은 올해에도 그 명성을 어김없이 이어갈 것 같다. 아니, 대중영화를 요리하는 솜씨가 한층 능숙해져 이름값을 더 떨칠 것으로 보인다.

'반지의 제왕' 2편인 '반지의 제왕:두 개의 탑'(이하 '두 개의 탑')이 7일 저녁(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번화가인 샹젤리제에 있는 엘리제 비아리츠 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세계 첫 공식 시사회)를 열었다.

잭슨 감독은 이번에 1편과 확연히 다른 호쾌한 액션과 웅장한 스펙터클로 무장했다. 또 스릴 넘치는 액션 사이 사이에 우정·탐욕 등 보편적 정서를 녹여내며 영화가 왁자지껄한 '싸움판'으로 끝나는 것을 예방했다. 긴장과 이완, 조임과 풀림이란 상업영화의 코드를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신화의 세계에 제대로 접목한 것이다.

'두 개의 탑'은 당초부터 액션이 기대를 모았다. 3억5천만달러(약 4천2백억원)라는 천문학적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3부작 전체를 미리 완성하는 엄청난 도박을 벌였고, 2편에선 드라마 위주의 도입부 성격인 1편과 달리 선과 악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3부작의 얼개가 확정된 만큼 1편과 2편의 연결성도 주목됐다. '두 개의 탑'은 처음부터 현란한 액션으로 시작한다. 전편에서 불을 뿜는 괴물과 함께 지하세계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마법사 간달프(이안 맥켈런)가 괴물과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두 개의 탑'에는 크게 세 갈래의 이야기가 흐른다. 전편에서 뿔뿔이 흩어졌던 원정대가 각기 다른 길을 가는 것이다. 절대반지를 '불의 산'에 가지고 가 녹여 없애려는 호빗족(半人族) 프로도와 그의 하인 샘(숀 어스틴), 프로도와 헤어져 악마의 군대에 사로잡힌 호빗족 청년 메리(도미닉 모너건)와 피핀(빌리 보이드), 붙잡혀간 호빗족을 구출하려는 인간족 전사 아라곤(비고 모르텐슨)·요정 궁사 레골라스(올랜도 블룸)·난쟁이족 전사 김리(존 라이스-데이비스) 등의 역정이 균형 있게 펼쳐진다.

'두 개의 탑'의 주인공은 호빗족의 리더인 프로도(일라이저 우드)보다 간달프와 아라곤으로 보인다. 절대악의 상징인 사우론과 그의 동조자인 사악한 마법사 사루만(크리스토퍼 리)의 동맹군에 맞서는 핵심 인물인 것이다. 특히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간달프는 전편보다 훨씬 강력해진 마법을 획득하며 영화의 신비감을 증폭시킨다.

감독은 각기 따로 진행됐던 원작의 세 가지 흐름을 한데 뭉쳐놓았다. 세 집단의 모험을 수시로 교차해가며 상호 긴밀성을 높인 것. 주요 인물만 10명이 넘지만 그들간의 연결 고리가 튼실한 까닭에 3시간이란 만만찮은 상영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편이다.

특히 2편에선 원작에 없는 로맨스를 추가해 흡입력을 높였다. 1편에서 암시됐던 아라곤과 요정 아르웬(리브 타일러)의 비극적 사랑을 과감하게 삽입했다. 영원불멸하는 요정의 운명마저 포기하며 생명이 유한한 인간족 아라곤을 사랑하는 아르웬의 순백색 사랑이 칼이 부딪히고, 화살이 난무하는 피비린내 전쟁터를 순화시킨다.

영화의 백미는 막바지에 장대하게 묘사된 헬름 협곡 전투다. 해일처럼 밀려드는 악의 동맹군에 인간·요정·마법사의 연합군이 대결한다. 전투의 규모나 긴박성, 전술의 다양성, 그리고 상황의 돌변성 등에서 여느 작품에 뒤지지 않는 영상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영화가 액션 잔치로 비치지 않는 건 인간의 나약성에 대한 성찰 덕분이다. 선악 구분이 명확한 '007''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같은 어드벤처극과 다르게 소유욕·권력욕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초상이 그대로 노출된다. 악의 세력에 자기를 버리려는 프로도, 이루지 못할 사랑에 번뇌하는 아라곤, 사악한 마법사의 유혹에 넘어간 인간족 등, 초인적 영웅담이 아닌 보통 사람의 고난기에 근접했다는 점에서 반갑다.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아기자기한 재미는 덜하나 화면을 꽉 채우는 서사적 감동은 꽤나 묵직하다.

원작을 쓴 JRR 톨킨의 열혈팬이라면 '두 개의 탑'이 불만스러울 수 있다. 사랑·희망 등의 보편적 가치, 현란한 액션을 강조한 까닭에 원작의 미세한 느낌이 다소 희생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원작이 인간의 원형을 탐구한 팬터지 소설이고, 또 대중을 겨냥하는 상업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크게 꼬집힐 일은 아닌 것 같다. 19일 개봉.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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