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등 지켜 본 동아시아 전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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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워싱턴=김진 특파원] 6일(미국 현지시간) 타계한 윌리엄 글라이스틴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격동기라 할 수 있는 1978년 7월부터 81년 6월까지 만3년간 주한대사로 재직하면서 10·26, 12·12,5·18을 가까이서 지켜본 미국인이다.

당시는 인권을 거론하며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안보와 경제발전을 주창한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이 정면으로 맞붙었던 시기였다. 이어 朴대통령이 암살 당하고 짧은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거쳐 5공 정권이 등장했다. 이 고비마다 미국의 배후 방조·책임 논란이 뒤따랐고, 그 가운데에 글라이스틴 대사가 있었다. 그는 88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특위로부터 증인 출석을 요청받았으나 침묵을 지켰고,90년대 후반부터 입을 열기 시작했다.

99년에 그는 회고록 『대혼란, 제한된 영향력』(한국판 제목 『알려지지 않은 역사』)을 출간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등장을 지연시켰던 사건에 미국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의 강경진압이라는 신군부의 잔인한 행동에 미국은 공모자가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것만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79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카터가 김일성을 동참시켜 3자회담을 열려고 했으며,12·12 이듬해인 80년1월 30여명의 장성급 장교들이 전두환을 제거하는 역쿠데타를 기도한 사실 등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퇴임후에도 20여년간 한반도 전문가로서 활동했다. 올해초엔 도널드 그레그 등 다른 전직 주한대사 3명과 함께 북한을 방문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6년 중국 베이징 태생인 글라이스틴은 예일대를 졸업, 51년 국무부에 들어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거쳐 미 국가안보회의 선임국장 등을 역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관을 지냈다. 81년 주한대사를 끝으로 외교관직을 떠난 그는 미국외교협회 부소장 등으로 활동했다.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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