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교수와 자갈치 아지매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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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려되는 지역주의가 되살아나고 있다. 3金 퇴장과 함께 잦아들 것으로 기대했던 지역주의가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손쉬운 방법으로 표를 얻을수 있다는 구악적 발상이 아직도 두 진영의 의식 저변에 짙게 깔려 있는 탓이다.

지금 우리 주위를 감도는 지역주의는 3金시대의 그것보다 더 교활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나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진영은 지역주의 부활에 대한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 지역주의 탈피를 가장(假裝)하면서 실제로는 지역주의를 더 조장하고 있다. 李후보는 '충청도의 아들'이라고 자임하고 상대를 'DJ의 양자'라며 부산과 절연시키기에 부심한다. 盧후보는 호남의 지지는 혁명적 결단의 소산일 뿐이라며 '부산의 아들'임을 강조한다. 말로는 탈(脫)지역주의를 역설하면서 서로가 지역감정에 기초한 지지를 '걸(乞)기대'하는 것이다.

최근 '강혜련 교수와 자갈치 아지매 파동'은 지역주의 싸움의 전형이다. 강교수는 TV토론에서 발언한 '후세인 수준'과 관련, 욕설·협박이 집중돼 인터넷 게시판을 폐쇄해야 했다. 아지매 이일순씨는 盧후보 찬조 연설 이후 밀려드는 전화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이같은 '얼굴 없는 무차별 테러'는 철저히 지역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e-메일이나 전화에는 상대 후보에 대한 배척을 넘어 적개심이 철철 넘친다.

나아가 이들 사건을 언급하면서 펼쳐지는 양당 선거대책본부의 공방은 탈지역주의를 악용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나라당은 "강교수는 탈지역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호남에서 盧후보 지지 97%'라는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엔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한나라당이 광주 유세 때 '달걀 세례'를 유도해 반(反)호남 정서를 몰아가려 한다는 민주당의 주장도 비슷한 지역감정 조장이다. 탈지역주의를 말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이런 얄팍한 수법으로 새 시대 정치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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