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핵심가치 배반하면 고객이 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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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98년 설립된 이 회사의 경영진은 2000년 회사의 미래를 이끌 모토를 정하기로 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 문구 ‘악해지지 말자’였다. 그리고 ‘전쟁’을 선포한다. 적(敵)은 같은 나라의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야후였다. 각각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검색포털이었다. 마침 세계적으로 MS 윈도 운영체제(OS)의 폐쇄성과 독과점 논란이 일기 시작한 참이었다. 검색 결과를 보여줄 때 대형 광고주를 상단에 배치하는 야후의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구글은 자사 검색엔진이 모든 정보를 편견 없이 스크린해 그 결과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한다는 점을 집중 홍보했다. 자유로운 정보 접근권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전략은 적중했다. 네티즌과 언론은 구글을 인터넷에 민주적 이상을 구현할 차세대 리더로 지목했다. 젊고 창의적이고 도덕적이기까지 한 기업 이미지는 폭발적인 수익 증대로 이어졌다.

10년이 흐른 지금, 회사의 중흥을 이끈 모토가 되레 부메랑이 돼 구글을 옥죄고 있다. 2006년 중국 진출을 위해 중국 정부의 검열 요구를 수용한 것이 시작이었다. 결정적 한 방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법인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으로 이어진 ‘스트리트 뷰’ 논란이다. 거리 보여주기 동영상 서비스를 준비하며 e-메일 등 각종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한 혐의다.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는 해명에도 세계 네티즌의 반응은 싸늘하다. 구글의 무지막지한 정보 탐식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4시간마다 미 의회도서관 분량의 정보를 긁어 모은다. ‘구글의 지배(Googlocracy)’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시작됐다.

구글 수익의 97%는 광고에서 나온다.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다양하고 정밀한 개인정보가 필요하다. ‘무료’인 구글의 각종 서비스는 실상 네티즌이 스스로 제공하는 개인정보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문제는 결국 신뢰다. ‘정보를 주고받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악한 방식으로 모으거나 활용하진 않는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내세운 핵심 가치를 배반한 기업에 고객은 냉정하다.

이나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