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버스가 점령 주인 행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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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용차로 실종 서초일대 전철역

지난 4일 오전 7시30분 서울 강남대로의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 구간. 출근길 교통체증이 한창인 가운데 50여m 길이의 버스전용차로에 전세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로 가는 학생과 교직원을 실어나르기 위한 셔틀버스들이다. 히터를 틀어놓고 학생들을 기다리는 동안 버스 옆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공회전되는 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때문에 코와 입을 막고 종종걸음을 한다. 보통 버스가 한 곳에 정차해 있는 시간은 15∼30분. 학생을 모두 태운 버스가 떠난 후에는 다음 차가 그 자리를 메우기 때문에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이곳은 버스행렬에 꼼짝없이 점령당하고 만다.

◇커지는 주민 고통="밤 12시부터 주차해 놓은 차들도 있어요. 새벽운동하러 단지 밖에 나가는 것은 상상도 못 합니다. "

강남대로에서 80m 안쪽에 위치한 W아파트에 살고 있는 독자 김선인(41·여·주부)씨는 단지 밖 곳곳에 서있는 버스를 가리키며 불만을 토로했다.

학생들을 실어나르기 위해 강남역 주변을 승하차장으로 이용하는 버스는 15개 대학에서 총 1백55대. 버스가 강남역 3번 출구에서부터 강남대로를 따라 정차할 수 있는 구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 주차하거나 빙빙 돌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그러다 보니 안전은 물론 소음과 대기 오염 문제가 이 지역의 단골 민원사항이 됐다. 특히 여름·겨울철에는 에어컨과 히터 작동을 위해 시동을 켜놓기 때문에 매연 피해가 심각하다. 또 골목골목 서있는 버스들이 주민들 차량의 시야를 가려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金씨는 "주민들도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통학버스를 무작정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만 주장할 수는 없다"며 "시나 구청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효과없는 단속=현재 26개 수도권 대학 버스 2백38대가 서초구를 환승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강남역 외에도 ▶교대역 6개 대학 43대▶고속버스터미널 주변 3개 대학 33대▶사당역 주변 2개 대학 7대의 버스가 있다. 이를 이용하는 학생은 8천여명에 이른다. 서초구에 셔틀버스가 몰리는 것은 서울에 거주하는 지방대학 통학생들이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결하기 쉽고 고속도로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강남역 등에서 주정차 위반을 단속하고 있으나 단속원을 잠시 피했다가 오는 숨바꼭질 차량이 많아 실질적인 단속이 힘든 실정이다.

내년부터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으로 시·도지사가 지정하는 곳에 대해 공회전 단속을 할 수 있게 돼 이로 인한 매연피해는 줄일 수 있을 전망이지만 강남역 주변 등에 몰리는 버스를 분산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H대학 셔틀버스 운전자 조정휘(61)씨는 "우리도 단속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주민들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학생 편의를 고려하면 이곳에 주차하는 것 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시급한 해결책 마련=조남호(趙南浩)서초구청장은 "통학 버스를 위한 환승센터를 설치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며 양재역 주변 서초구민회관 인근 공터를 그 장소로 제시했다. 이곳은 2천1백20평 규모의 대법원 소유지로 인근 주민들이 소규모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초구는 이에 따라 이 부지를 셔틀버스 환승주차장으로 임시 사용하도록 허용해 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했으나 대법원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통합 등기소 등 법원 시설을 지을 예정이기 때문에 임대해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또 1년 전부터 서울시에 환승센터 지원 대책 마련을 요구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다.

공동취재=김선인 독자·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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