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광고에 아파트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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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아파트 광고전이 치열하다. 주요 건설업체들이 기존 광고를 교체하면서 업체별로 한달에 3억∼10억원의 광고비를 쏟아붓고 있다. TV 광고를 하는 업체는 18곳에 이른다. 지난해 열곳 정도였던 것이 배 가까이로 늘었다. 광고를 통한 마케팅이 치열해진 것은 건설업체들이 아파트에 별도의 브랜드를 붙이면서부터다. 건설회사 관계자는 "2000년을 전후해 브랜드 아파트가 등장하기 시작해 지금은 대부분의 업체가 별도의 브랜드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며 "브랜드 출범 초기에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광고물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래미안)·현대산업개발(아이파크) 등에 이어 최근엔 LG건설(자이)·이수건설(브라운스톤)·태영(데시앙) 등이 아파트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광고전에 뛰어들었다 .이에 삼성물산·SK건설(뷰) 등도 최근 기존 광고를 교체하면서 맞대응하고 있다.

광고전이 치열해지면서 내로라하는 톱 모델을 기용하는 것도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광고대행사인 서울다씨의 김태웅 국장은 "예전에는 아파트 광고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가족 간의 화목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며 "그러나 최근엔 소비자의 감각에 호소하는 광고가 늘어난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톱 모델을 기용한 광고의 대부분이 감각적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반면 삼성물산·이수건설 등은 무명 모델을 활용해 품격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롯데건설(캐슬)은 지휘자 금난새씨를, 월드종합건설(메르디앙)은 발레리나 강수진씨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기용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두산건설(위브)의 광고는 패션 의류 광고를 연상케 한다. 모델로 등장한 영화배우 이미연씨는 보라색 원피스 한벌을 사기 위해 일주일 동안 돌아다닐 정도로 극성이다. 광고에서는 이처럼 까다로운 여자가 사는 아파트가 바로 자사의 아파트라는 것을 알린다.

탤런트 최윤정씨를 등장시킨 태영의 광고도 이와 비슷하다. 광고에서 최씨는 페인트로 아파트 한면에 대형 추상화를 그리는 데, 그림이 완성돼 가는 모습과 아파트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장면을 교차시킨다. 결국 자신의 취향과 감각에 따라 그림을 그리듯 아파트도 자신의 감각에 맞춰 골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대우건설의 아파트 광고는 화폭 앞에 앉아있던 모델 김남주씨가 무언가에 홀린 듯 뒤를 돌아보는 데, 커다란 구슬 속에 꿈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아름다운 집이 있다.

광고를 제작한 원앤리컴 도지환 국장은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광고에서 벗어나 아파트가 하나의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감각적인 내용보다도 품격을 강조하는 광고도 많다. 영화배우 이영애씨를 등장시킨 LG건설 광고의 경우 전문직 여성이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향유하려면 품격있는 아파트에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 프리미엄 아파트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대형 PDP TV·고급 오디오 세트 등을 소품으로 사용해 고급스런 이미지를 전하려고 했다.

이수건설의 아파트 브랜드인 브라운스톤의 광고는 남자 외국인 모델이 잠깐 등장하는 것 외에는 미국 뉴욕·보스턴의 고급 아파트를 보여준다. 브라운스톤은 19세기 뉴욕 등 미국 북동부 지역의 상류층이 사는 저택을 짓는 건축양식으로 지금도 미국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용어. 광고는 미국의 최고급 주거지역을 보여주면서 자사의 아파트도 그에 못지 않은 품격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2000년 초 브랜드 아파트 바람을 일으킨 삼성물산 래미안은 지난달 광고를 교체하면서 후발업체들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 광고는 오페라홀에 간 여성이 친구의 손에 래미안이라 씌어진 열쇠고리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통해 자사 아파트에 산다는 것 자체가 품격을 높여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로 제작된 광고도 무대가 뉴욕의 갤러리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거의 흡사하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선발업체로서 브랜드 인지도를 많이 높인 상황이어서 기존 광고의 연장선 상에서 새 광고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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