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CD로 예수 사랑 전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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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울 강북구 미아 9동 성바오로딸수도회 본원에 들어서면 여자 수도회에 대해 품었던 선입견이 무너진다. 접객실 옆에 남자용 화장실까지 있으니 금남(禁男)의 집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사회로부터 멀찍이 돌아 앉아 가능한 한 울타리 밖을 넘보지 않으려는 분위기도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회에 파고들고 있다. 지난주에만 신경정신과 원장인 양창순씨가 환자를 치료하면서 겪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영성을 이야기한 책 『지푸라기가 되어주는 마음』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소속 수녀 7명이 화음을 맞춘 성탄성가집 CD '더 퍼스트 노엘'을 내놓았다. 지난주 책과 CD를 들고 신문사를 찾은 오경은(헬레나)수녀의 명함에는 성바오로딸수도회 광고촉진부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판촉행사 등 적극적 사회활동

오 수녀는 이 수도회의 활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누구나 유익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된 한편 사회에 폐해를 끼칠 요소도 늘어났지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 모르지만, 매스 미디어를 활용하여 선(善)을 퍼뜨리는 것이 수도회의 주된 활동입니다."

수도회는 성격에 따라 기도와 노동에 전념하는 관상수도회, 사회활동에 적극 나서는 활동수도회, 교육으로 사랑을 전하는 교육수도회로 나뉘는데, 성바오로딸수도회는 활동수도회에 속한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든지 고아나 노인을 돌보는 일보다는 매스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성바오로딸수도회의 특징이다.

이런 전통은 이탈리아의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1884∼1971)가 성바오로딸수도회를 창설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1914년 창설 당시 유럽에서는 책과 신문을 통해 공산주의가 급속도로 전파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맞서려면 역시 전파력이 빠른 미디어로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랑을 펴야 한다는 것이 알베리오네 신부의 판단이었다. 성바오로딸수도회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1961년. 지금은 서울의 본원과 전국의 분원 16곳에서 2백50여명의 수녀가 사회 속에 묻혀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려 노력하고 있다. 속세에 발을 깊이 담그고 있는 만큼 기도생활은 더 치열해야 할 듯하다.

인터넷으로 성경강의도

올 3월 첫 서원을 한 정상희(첼레스티나) 수녀는 움직이면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커피를 끓인다고 해 봐요. 커피를 끓이면서도 지향점을 두는 거죠. 겉으로 보기엔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끓이는 행위와 다를 게 없지요.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정성이 들어가고 기도가 들어가고, 뭐 그런 거예요."

수도원의 5층 건물 구석 구석엔 1백60여명의 수녀들이 맡은 소임에 열심이었다. 음반과 비디오, 카세트 테이프, 책을 만들고 있었다. 출판물의 경우 1년에 30여종이 나온다. 예수회 송봉모 신부의 『상처와 용서』와 미국 의사 AJ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는 일반 서점에서도 스테디 셀러로 꼽히며, 도종환·안도현씨 등의 시에 곡을 붙인 음반 '행복한 과일가게'와 '사랑의 이삭줍기''기쁨은 빛줄기처럼' 등은 기교를 부리지 않은 청순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요즘엔 이 수도회 역시 인터넷(www.pauline.or,kr)을 통해 성경강의를 하고 상담에도 응하고 있다. 오는 9∼24일 교보문고에서는 수녀들이 수도회에서 나온 책을 들고 직접 고객을 찾는다.

그래도 정보화 물결은 수녀들에게 힘겹다. 오 수녀는 수도회의 활동에 대해 "바다에 던져진 물 한방울에 지나지 않아요. 하지만 그 한방울이 없으면 바다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늘 버리지 않아요"라며 웃었다.

정명진 기자 m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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